<익명의 섬> 이문열 – 폭력의 서사화에 대한 한 시각
<익명의 섬> 이문열 – 폭력의 서사화에 대한 한 시각
익명의 폭력성에 대하여
얼마전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을 읽었다. 그의 초기작에서는 주로 폭력의 문제가 주요 소재로 부각되었는데 이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제 익명의 섬과 같은 공간이 많아지고 있음을 경계함과 동시에 또, 그것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도시에서는 개개인의 삶의 범주인 인근에서조차 익명성이 난무하고 각박한 사회 현실이라는 익명이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익명을 묵인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동족 부락의 일례를 통해서 고립된 개인 사회에서는 더욱더 익명의 섬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필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익명성은 폭력에 다름아니다.
이문열이 만든 캐릭터의 특성
이문열 소설의 주인공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 다다르려 노력한다. 그것은 높은 예술적 경지일 수도 있고 종교 적 또는 정치적 이상일 수도 있다. 그 목표가 무엇이든, 그의 소설은 한결같이 어떤 궁극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해 나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문학이 갖는 참다운 미덕을 환기시킨다. 작중 주인공인 <나>는 작중 관찰자로서 윤리성에 갇혀 있는 현대 여성이며 상대인물인 깨철이는 윤리적인 터부 때문에 익명으로 보호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으로부터 익명의 윤리성이 부각된다.
이처럼 그녀의 폭력에 대한 이미지는 마치 숲속에서 뱀을 만난 정도의 수준으로 변한다. 그것이 바로 익명성의 힘인 것이다. 그 후, 같이 근무하는 남자 교원에게 그 동안 관찰해 온 깨철이란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 교원도 깨철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남자들 역시 동족들 사이에서의 체면을 위해서 또, 익명의 사내 깨철이의 뒤끝 없음을 믿고 그를 묵인해 준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이 마을을 떠나던 날, 정류소로 나오던 나는 깨철이를 만나게 된다. 나의 후임으로 오는 여자 교원에게 깨철이의 일을 이야기해 주려고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그것은 그도 언젠가 깨철이가 필요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작가의 메시지 추론하기
이 작품은 특정한 시대나 그 시대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깊은 통찰을 통하여 혀실감 있는 사실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문열 소설은 낭만적이지 않고 사실고발적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사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에는 시대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문열이 이러한 소설 발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연두에 두고 정밀하게 읽으면 그의 소설들 대부분이 강한 시사적 의미를 띠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의 시대배경은 1980-1990년대로서 이땅의 산업화와 개인주의가 팽배되고 이른바 서구지향적 현대화가 본격적으로 꽃피운 시절이다. 익명성은 개인주의 사회의 편리함을 도모해주지만 한편으로는 폭력성을 동반한다. 개개인의 윤리성이나 피해상황으로 본다면 막대한 폭력의 문제가 익명이라는 이름 하에 잊혀져가는 게 사실이다.
이문열의 엄숙한 교훈주의가 유교사상에 바탕한다는 근거는 바로 이 작품에서 교훈의 개념이 중용에 나오는 신독 개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신독(愼獨)이란 (<見乎隱 莫見乎微, 故 君子 愼其獨也.중용(中庸)> -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느니라-는 개념인데 작중에서 <나>와 깨철과의 정사는 신독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익명적 행태가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동양철학의 지식과 소설 적용하기
작품에서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익명적인 현대사회의 새태고발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독공부에 의한 양심적인 삶의 태도와 도덕심 견지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주역의 괘로 보면 진위뇌(震爲雷)인 중진뢰 (重震雷)와도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진상진하(震上震下)다. 진(震)은 우뢰요 진동인데 위아래가 모두 이 진(震)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천둥이 거듭 울리는 형상인 바, 진뢰(震雷)라고 이름한 것이요, 또한 하나의 양(陽)이 음(陰)의 밑으로 부터 생동함이 겹쳐있는 바, 그 분발하여 위세를 떨치게 됨을 진뢰(震雷)라고 이름한 것이다. 천둥이 연달아 치면 소인(小人)은 두려워 떨면서 그제서야 허둥지둥 몸을 사리고 허물을 살피지만 대인(大人)은 근심치도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나니, 이는 사사로운 것과 부정한 것을 돌아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신독(愼獨) 공부를 평일에도 일관되게 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신독에 대한 재고
신독이란 스스로 삼간다는 뜻으로, 비록 혼자 있을 때라도 귀인을 앞에 모신 듯이 일체의 행동을 조심하고 삼간다는 말이지만『익명의 섬』에서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있다. 폭력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도덕심 상실까지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반복적으로 도덕불감증에 노출되는 현대인은 관습적 폭력의 실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필론 돼지』와 같은 작품에서는 폭력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우리들의 현실을 통하여 작가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일면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본원적 모습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 것인 동시에,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위선과 모순을 주제 의식으로 하여 이문열은 지식인으로서의 주인공의 무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약점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