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왜 생겨났을까?
소설은 왜 생겨났을까?
이야기하기에 대한 상상력 발휘하기
곰곰 생각을 하면 희한하고 재미난 생각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재미난 이야기의 문학형태인 소설이란 것이 왜 생겼을까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예술 장르 중 하나인 문학이 되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좀 폼나게 말하자면 무릇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이고 그것은 언어 혹은 말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문자가 없을 때눈 구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학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 바로 문학이 무엇이며 왜 생겨났는가의 요점이 될 것이다. 내 상상력은 처음에는 그냥 심심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상상을 이어가자면 과거 석기시대에는 얼마나 삶이 무료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처럼 놀만한 것은 별로 없고 생존을 위한 삶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리라. 그러다 간혹 심심할 때 인류의 조상들은 뭔가 심심타파를 했을 테고 그게 아마도 무언가에 대한 기록하기 혹은 놀랄만한 이야기하기와 그걸 들어주는 놀이가 아니었을까?
문학 기원설에 대한 검토
문학의 기원은 대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충동설(模倣衝動說) (인간은 모방의 본능을 갖고 있으며 모방할 때 예술적 쾌감을 느낀다)과, 칸트의 유희본능설(遊戱本能說)은 무목적의 목적성, 예술자체가 쾌락이며 그 과정이 유희라고 보는 설이다. 또한 정신분석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욕구(人間慾求)의 발로(發露)로써 성욕, 식욕 등과 같이 창작욕이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라는 설 등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은 그야말로 가설에 불과하다. 또한 그 분분한 논의는 끝이 없이 학파를 만들어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원론적인 물음은 구체적이고 말단적인 문제부터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서양문학에서 제기된 문학론은 크게 4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방론(模倣論)은 문학작품은 인간 외부의 어떤 것을 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문학을 대상적 측면에서 바라본 예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효용론(效用論)이 있는데 이것은 문학으로 인간을 교화한다는 입장이고 문학을 독자의 측면에서 본 것이다. 셋째는 표현론(表現論)이다. 위대한 혹은 특정한 저술가가 창작한 것으로 문학 텍스트를 파악한 이 이론은 작가의 측면에서 문학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는 존재론(存在論)으로써 작품은 구조를 가진 하나의 독립된 존재물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른바 언어예술의 표상물인, 작품적 측면에서 문학을 평가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무엇이 문학인가 라는 질문은 허구의 초월적 미의식, 위대한 저술, 언어예술, 창작된 학문, 등의 세부적인 대답이 가능하다.
문학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
그 문제는 부분적인 접근보다는 총체적인 접근으로 문학에 대한 시각을 넓혀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여야 하는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문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결과로 도출되어야 한다. 먼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우선 문학에 대한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서양에서 소설의 발달과정은 통상 다음과 같다.
신화(myth)->서사시(epic)->로망스(romance)->소설(novel, short-story)
그리이스 로마의 신화시대에서 서사시의 시대로 또한 중세를 거치면서 서사시는 로망스로 변모되었고 오늘날의 소설 된 것이다. 본격적인 소설의 역사는 말하자면 몇 백년에 불과한 것이다. 시와 같은 장르와 비교하면 소설의 역사는 대단히 짧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동양적 소설의 발생에 대한 언급은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먼저 반고(班固)는 한서문예지(漢書文藝志_에서 소설가는 패관(稗官)에서 비롯되었으며 도청도설(道廳塗說)을 재미있게 꾸민 것으로 보았다. 장자(莊子)의 외물편(外物篇)에 소설은 남(고을 현령 정도의 인물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로서 크게 되기 어렵다고 했다. 飾小說以于懸領 其於大達亦難矣라 했다. 이는 소설을 꾸면 고을 현령 따위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짓은 크게 되기 어렵다는 의미로서 소설의 위상을 낮게 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시경은 극구 숭앙해 마지않으면서 소설에 해당되는 산문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논어에서 쾌도난신의 소도는 꾸민 이야기로서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동양의 고대에 있어 소설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이것은 플라톤이 시인을 폴리스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지론과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소설은 가치있는 것인가
문학의 가치에 대한 논의는 당대에 와서 관도(貫道), 즉 문학이 글을 꿰뚫고 공존하는 것이냐, 아니면 재도(載道) 즉 문학은 경을 실어 주는 수레에 비교될 것인가의 논쟁으로 비약된다. 동양에서는 소설이 본격적으로 꽃피우지 못했다. 한대의 설화, 당의 전기, 원명 이후에야 소설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우리 나라의 경우 금오신화에서 언급된 지, 전, 록, 기, 등의 소설 장르들은 각각 전개되지 못하였고 구운몽, 홍길동전 등의 작품 군이 있으나 서구소설처럼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후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서구와 거의 흡사해진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소설에 있어서는 전통적 발전보다는 시민사회를 거친 서구소설이 여과 과정 없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웹소설시대이다. 재미만 남은 오늘날의 소설은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나 통찰보다는 환생이나 회귀같은 판타지가 주는 희한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 소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빼고 가벼워진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