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 김정한 – 대결의지로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
<사하촌> 김정한 – 대결의지로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
고통 끝에 터져나오는 화염의 대결의지
김정한의 단편소설 <사하촌>의 불의 상징성은 반복되어 상징체계를 이룬다. 작품은 전부 8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면적 이야기 구조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도입부분으로 가뭄의 극심함과 복선의 암시. 2)한발 속의 저수지 물 시비, 고서방의 체포, 승려의 횡포. 3) 계속되는 가뭄과 보광리 만무방들의 대비. 4) 오래 계속되는 가뭄과 보광사의 기우제. 5)기우제의 후에도 끝끝내 계속되는 가뭄과 상한이의 죽음. 6)간평과 소작료인상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과 야학당의 논의. 7)야학당 모임의 대두와 덕아,철한의 혼례. 8)차압취소와 소작료 면제탄원과 보광사 방화의 암시.
위의 각 단락은 그 안에 각각의 사건을 갖고 있고, 그것들은 인물들의 전체적인 행동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객관적인 보편성을 제시한다. 김정한 소설의 구심점은 대체로 중요인물들의 행동성에 있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미학에 큰 충격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 행동의 근원적 동기가 언제나 개인적 자아를 초월한 집단의 연대의식에서 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광사 중들을 대결하려는 의지에서 절을 불태우는 불의 이미지는 대결과 대상소멸이라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불과 관련된 소설장치의 분석
불과 관련하여 사하촌에는 인물과 사건의 연계가 몇 개의 상징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선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첫째, 가뭄이다. 사하촌의 전체적인 배경과 사건의 발단과 전개가 가뭄에 의한 것이고 대단원의 동인(動因) 또한 가뭄에 있었다. 둘째로 나타나는 것이 가뭄에 의한 갈등과 마찰이다. 농민들과 승려, 보광리 사람들, 일제의 관료 등과의 마찰이 심화되어 결말로 치닫는 구조를 갖게 한다. 셋째 상징어로는 야학당(夜學堂)을 들 수 있다. 야학당을 통하여 사람들이 단결하여 힘을 응축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논의와 결의를 하게 된다. 넷째가 대결의지의 결의 즉, 방화(放火)의 상징성(象徵性)이다. 이 네 개의 상징어, 가뭄, 마찰, 야학당, 방화가 갖는 통일된 상징성은 다름 아닌 불의 상징성이다. 그것은 위의 8개의 사건구조가 불의 이미지와 관련되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불의 상징성을 갖는 상징어들에 의해 구성되는 작품구조를 위의 외면적 이야기구조와 대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가뭄--1장에서 5장까지 표면에 드러나며 6장에서 8장에는 원인으로 이면에 작용한다.
2)마찰--1장에서 8장까지 인물들의 생존조건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현실인 체제의 부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3)야학당--1장에서 5장까지는 존재는 하나 등장하지 않다가 갈등의 심화로 6장에서 8장까지 의식을 행동으로 표출하게 하는 원동력의 상징성을 갖는다.
4)방화 --실제로는 8장에 암시되고 있으나 상징적 구조의 추이를 살펴 보면 앞의 모든 불의 이미지들이 대결 즉 방화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이라는 상징어가 지속, 반복되어 상징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불의 성질과 소설적 변용
일반적 관념으로 불은 마찰에 의해서 생성되며 그 성질상 다른 것을 태우려 능동적으로 이동을 하지만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이러한 불은 정화와 재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재생은 어떠한 것 속에서 다시 생겨나게 되기 위한 공격적 양상인 것이다. 그것은 불에 있어서 반대양상의 대립과 또 어떠한 것의 대체를 위해서는 하나의 살아 있는 근원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세계의 끝, 즉 부활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의 수직, 상승의 이미지는 정복을 의미하고, 수직성의 본능은 공동생활과 수평적으로 억눌려진 본성을 양육하며 인간을 수직화하는 꿈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몽상이다. 그것은 인간을 가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삶을 더욱 연장시키는 일종의 생명적 비약이다. 불의 상징성은 물론 복합적이고 더욱이 다른 문화권의 상이한 전통과 체험으로 의미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적 의미는 객관성을 확보하며 의미부여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작품에서 가뭄과 마찰과 야학당 그리고 방화로 이어지는 불의 이미지는 점점 더 거세진다. 방화의 상징성은 작품의 전체적인 불의 이미지를 수렴하는 핵심요소이다. 그러나 방화 장면은 작품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이라는 물질적 상상력이 갖는 특수성과 작가의 세계관에 의한 작품구성의 필연적 결과로써 이미지의 기능과 의미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위정자와 민초 그리고 정치권력과 백성의 불길 같은 힘은 대립하는데, 슬기로운 지혜가 없다면 결국 불이 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