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 시마자키 도손 –염상섭의 <삼대>와의 비교
<家> 시마자키 도손 –염상섭의 <삼대>와의 비교
염상섭의 『三代』와 시마자키도손의 『家』는 전근대사회에서 근대화 사회로의 이행단계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는 작품들이다. 때문에 두 작품의 비교연구는 『삼대』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시야를 확보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家』(1910~11)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가족이 받은 정신적 압박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마자키도손(島崎藤村)의 자전소설로, 1898년 여름부터 1910년 여름까지 12년 동안 벌어진 일상을 다룬다. 저자의 청장년기의 삶을 예술화해서 기록한 것인 만큼, 등장인물은 대부분 실재 인물을 설정하고 단지 이름만 바꾸었다.
『家』는 근대정신과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몰락해가는 구가로 인해 고뇌에 휩싸이는 과정을 그린다. 영락해 가는 구가가 부과하는 중압감은 작중인물로 하여금 엄청난 고통을 갖게 한다. 작품에서는 구가의 중압감이 인간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파헤친다. 인재를 범속한 시정인으로 바꿔 버린 구가의 압력은 주인공 산키치의 형들을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착한 성격의 소유자들로 남에게 이용당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실패한 퇴폐의 길을 간다. 그것은 구가(舊家)의 욕망과 체면이 초래한 비극이다. 개인적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제도가 초래한 구가의 의식 문제다.
이 작품은 신가과 구가의 대조적 구성을 노정한다. 그것은 당시 일본의 전통적 인습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상극 간에 생긴 갈등이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메이지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이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마자키 도손의 <가>의 줄거리 요약
소설 『家』에 등장하는 가문은 벽촌인 기소지방을 개척한 집안이었다. 그 가문의 고이즈미 다다히로는 온 마을의 어버이로 존경을 받았으며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마음씨 좋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미쳐서 죽었고 집은 불타버려 옛날을 되살릴 만한 것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나머지 자손들은 모두 동경으로 옮겨 갔으며 그 집안을 이은 아들 미노루(実)의 잇따른 사업실패로 집안은 몰락해 가고 있었다. 또한 이 두 가문과 대립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나구라가’는 고이즈미가의 막내인 산키치의 처가이며 유키(雪)의 친정이다. 이 집안은 북해도에서 사업을 벌여 유키의 아버지 대에 재산을 많이 모은 신흥부자이다. 위의 두 가문의 구성원들이 옛날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나구라가 가문의 사람들은 아주 실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있다. 도송은 대조적인 세 가문을 통하여 제각기 다른 형태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데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문 중심적인 삶으로 봉건 가족제도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家』의 모두 부분은 염상섭의 『三代』와 유사하게 집안 식솔들이 대식구를 이루고 있다. 고용원 중에는 조상 때부터 대를 이어 근무 하고 있는 고용원도 있었다. 이들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라기보다는 주종관계로 맺어진 사이이다. 이 집안의 주인 다츠오는 사업에 뜻을 품고 도회로 나가 사업을 하였으나 실패하자 집으로 돌아와서 집안일에 종사하고 있다. 『三代』에서도 조의관 슬하의 삼대를 이루는 직계 혈연가족 외에도 조상훈, 지주사, 최참봉, 원삼이 등의 식솔들이 열명 이상의 대식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대가족의 몰락은 소설 세계에서 구시대 가족의 거대한 붕괴현상으로서의 유사성을 갖는다.
『三代』에서 을사년 이후 당대 사회가 근대화로 치닫는 과정에서 혼란기를 맞이하고 조의관의 이 타락상이 시작되는 것과 유사하게 『家』에서는 명치유신 이후 일본사회는 전통사회가 몰락하고 혼란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혼란기를 겪는 중에 부를 축적한 자산가라는 새로운 신분계급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지금까지 상류계급의 주류를 이루었던 지주들의 위치를 흔들며 상류계급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킨다. 상대적으로 지주들은 몰락의 과정을 걷게 된다.
코이즈미가문의 몰락과 조의관 가문의 몰락 비교
코이즈미 집안은 지방의 소지주로 이 소설 서두에 소개될 때부터 몰락의 과정을 겪고 있는 가문이다. 『家』는 명치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여 지방의 세 가문을 중심으로, 가장의 사업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대가족제도가 몰락해 가는 과정이 주로 묘사된다. 그것은 시대적으로 변화되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대가족이 분산되어 가는 운명적인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들은 선천적으로 방종한 혈통을 타고나서, 자신의 파멸은 물론이고 가족들마저도 파멸로 이끌어간다. 이 작품은 성적으로 방종한 유전적 요인과 시대적인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파멸되어 가는 가족사를 묘사한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부시대부터 하시모토 가문에 흐르고 있는 방탕한 기질을 일기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형제와 아들들에게 이어지는 운명을 암시한다.
또한 『三代』에서도 유사한 점이 드러나는데, 조의관 조상훈 그리고 조덕기의 삼대의 남자들은 조의관 수원집을 얻고 또 다른 축첩을 시도하는 욕정이 유전적인 상훈은 교회의 교인들보다는 친구들과 술과 도박을 즐기면서 축첩을 자행한다. 그것은 그의 부친인 조의관의 소위 ‘오입’을 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조덕기가 필순으로 첩으로 들이기 위해 일본유학을 시키려는 장면에서 조부와 친부의 속물적인 유전은 흡사 자연주의 소설의 분위기가 나는 것도 두 작품의 유사성이라 할 수 있다.
두 작품의 공통성과 유사성
염상섭이 일본에서 엄청난 독서를 했는데 아마도 그가 사마자키도손의 작품을 읽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은 세대갈등과 세대단절의 공통성이 있다. 『家』와 『三代』에 나타난 변동기의 전통가족의 몰락상을, 세대 교체극과 <부친의 부재>, 그리고 자아확립의 관점에서 양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전통적 가계의 결속이 점차 붕괴되어 가는 모습이 엿보이는데, 각 세대의 단절양상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家』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경우, 관심이 외부로 향해 있다. 외부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빠져드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데, 생활을 위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항상 외부 세계를 향한 관심을 나타내는 산키치의 모습 속에서 항상 옥내와 옥외 경계에 위치하여, 근대일본의 구가의 몰락과 새로운 집을 모색하고 구제 길을 희구하는 몸부림을 발견하게 된다.
『三代』에서 역시 대표적인 세 남자가 외부 지향성을 띈다. 조부인 조의관은 사십대에 혼란기를 틈타 벼슬을 돈주고 사면서부터 외부활동을 시작하여 식민지시대가 되자 정총대 등의 일본인 지위를 사는 등의 외부 활동에 힘쓴다. 또한 조상훈도 소위 지사로서 외부활동을 하다가 교회 사업에 몰두하게 된다. 조덕기 역시 김병화와 어울리면서 동정자로서 항일운동에 자금을 대는 등의 일을 하는 동시에 조부와 함께 기무라 형사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외부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그런데 두 작품이 차이점도 존재한다. 먼저 작중 인물이 놓인 세계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부각된다. 『家』는 근대전환점의 혼란기이지만 『三代』는 근대전환과 혼란기에 일제강점기라는 주권 부재의 현실이 상당량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키치에 비해 조덕기는 소설에서 삶을 모색 중 일제강점기하의 식민지인의 고뇌가 더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