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기든스 <제 3의 길>
앤서니 기든스 <제 3의 길>
정치제도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
인간의 기대 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노령화 시대에 과연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을 누리며 제대로 살아가려면 어떤 사회 통합과 정치이념이 우선되어야 할까? 고래로부터 끊임없이 시행되고 변화되어온 정책과정의 근본에는 행복에 대한 추구가 밑바탕이 되어있다. 그 당대에 대단히 정교한 지도 이론으로 대두되고 시행되었지만 시공간이 바뀌면서 불완전한 유기체로서 인간의 이론 역시 인간의 욕망 앞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며 변화되고 있다. 어떤 정치 체계나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세운 이론이나 관념으로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모두가 만족하는 답안을 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좌우가 대립하면 문제는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유럽에서 시작된 좌, 우의 이념시대에서 이제는 그것을 초월하여 어떻게 정치 객체로서의 피지배계급들 스스로 제도적 억압으로부터 초월하여 국가나 제도로부터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과연 정치제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기든스처럼 특정한 사회를 원하는가
앤서니 기든스는 그의 저서 <제 3의 길> 1장 서두에서 정치적 삶은 이상이 없다면 별 의미가 없고, 이상은 현실의 가능성과 결부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회를 창조하길 원하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수단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라고 강조하며 영국의 시대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즉 좌파와 우파 진영의 이념을 초월하는 새로운 모색의 길을 사회주의자적 관점에서 저술하고 있다. 앤서니 기든스는 그의 저서에서 일관되고도 설득력 있는 정의를 제시한. 내용은 좌와 우의 실패를 경험한 오늘날의 모든 국가들에게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공해 주고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질적 좌우 이념대립과 지역별 대립 구도 속에서 막연히 사회주의의 인간평등에 대한 이상은 좋으나 자유경제 시장체제에서 경쟁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한국인들을 대단히 정치적 굳은 살을 지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좌우 대립은 과연 정치적인가 이권추구인가.
내년 4월, 다가오는 총선을 맞아 각 당 국회의원 후보들은 공약보다는 당리당략에 맞추어 연일 매스미디이어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더 판치는 것을 또다시 경험하며 20여년 전에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논제에 대해 그들은 얼마나 절감하고 있을지가 모르겠다.
갈수록 커져만가는 빈부격차와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이념대립, 생산연령 감소로 늘어만가는 노년부양비 부담으로 점점 쌓여가는 세대 간의 갈등, 잦은 노사 간의 갈등 그리고 강대국들 틈에서 주권국가로서 제대로 권리행사도 못하고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며 분단된 작은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을 지배계급들은 얼마나 우선 가치에 두고 있을까?
경제적 손실에 나날이 깊어져가는 서민들의 시름을 어떻게 접근 치료할 수 있을까? 그리고 좌파나 우파가 근본적인 철학을 가지고 경제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하고자 할까? 과거 군사정부 시절 극우보수주의자들과 온건 우파가 집권하던 시기에서 공식적 좌파라는 명함은 내밀지도 못하고 중도좌파라는 성향을 가진 정당이 거론되고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정부 이후 극좌파들이 득세를 하고 우파들이 대거 사라지고 지금 중도 우파가 겨우 명함을 내미는 현상이 역전되어 나타났다. 더욱이 우파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그냥 그런 형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톤 터치식의 반복은 앞으로 반복될 것으로보 인다.
제3의 길이 가능한가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제 3의 길을 위해 해당 정치집단이 추구하는 이익을 버리고,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 즉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재규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제 3의 길 정치에는 평등, 약자 보호,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책임 없이 권리 없다, 민주주의 없이 권위 없다, 범세계적 다원주의, 철학적 보수주의라는 주요 원칙이 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치인이 지금 국회의원 300명 중에 얼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