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이야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이야기
신라 건국신화의 요약
박혁거세 신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실려있다.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엣날 진한 땅 여섯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왕을 모시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갔다. 남쪽을 보니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하늘에서 내려온 흰말이 엎드려 있었다. 천마는 붉은 알 하나를 두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알을 깨어보니 단정하고 잘생긴 남자아이가 나왔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빛났다. 이로 인해 세상을 밝힌다는 뜻에서 혁거세 왕이라 이름했고,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박씨라 했다. 사람들이 모두 왕으로 받들며 배필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날 알영(閼英)이라는 우물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부리 같았다. 월성의 북천(北川)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하고 남산기슭에 세운 궁에서 혁거세와 함께 봉양되다가 13세 때 혁거세와 혼인해 왕후가 되었다. 혁거세는 6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죽었는데 그 주검이 승천하였다가 5체(五體)로 분리되어 땅에 떨어지더니 왕후도 따라 죽었다. 분리된 5체를 한데 묻으려 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 방해했기 때문에 다섯개로 나뉜 시체를 다섯 능에 각각 묻고 사릉(蛇陵)이라고 불렀다.
박혁거세 신화의 이상한 내용들
이 신화에는 씨족사회들이 모여 하나의 왕족을 이루는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른 건국 시조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신(天神)이 내려와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는 것인데, 특이한 것은 천신이 산이 아니라 우물로 내려왔다는 점이다. 남자는 나정 그리고 여자는 알영이라는 우물에서 나왔다. 아마도 신라에서 우물을 성스러운 곳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혁거세와 알영이 같은 날 신비롭게 태어나 배필이 되었다는 것은 공교롭기는 하다, 후대에 별신굿에서 남녀신령이 내려와 짝을 짓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이다. 알영이 태어났을 때 입술이 닭부리처럼 뾰족했다가 목욕 후 그 새부리가 떨어졌다는 사건은 박혁거세의 짝으로 왕비가 될 여인의 신비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서 한 마리 계룡이 나타나더니 그 왼편 옆구리로 한 계집아이를 탄생시켰다면 알영의 용의 후예이고 닭의 부리를 가졌다면 소위 계룡의 신비로운 존재인 것이다. 결국 성스러운 남녀가 자라나서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한의 선제 17년에 박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었고 알영은 왕후가 되었다. 그리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일컬었다. 처음 왕이 계정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국호를 계림국이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왕의 죽음에 대한 고사이다.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하늘로 올라갔는데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왕의 유체가 흩어져 땅으로 떨어졌고 알영 왕후도 따라 죽었다. 승천한 왕의 시신이 왜 칠일 동안 공중에 떠 있었을까? 사람들이 그 흩어져 내린 왕의 유체를 한자리에 모아 장사지내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사람들을 쫓아내며 장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면 그 뱀의 존재 무엇이고 그 정체는? 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시신을 다섯 부분으로 흩어져 놓인 그대로 장사를 지냈다. 그래서 릉의 이름을 다섯 개의 능, 그래서 오릉이라 했고 뱀과 관련되어 사능이라고도 했다.
용과 뱀과 닭의 상징성들
통상 용과 뱀은 유사한 모양이고 닭은 주작이나 봉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인간 보도 영험하고 초능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단군이 천신인 환웅천왕와 곰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위인이라면, 고주몽 역시 천신인 해모수와 하백신의 딸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위인이다. 박혁거세 역시 천마가 모시고온 하늘에서 강천한 위인이고 그의 아내인 알영왕후 또한 계룡의 후예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신라라는 국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보다 신비롭고 위대한 인물이 건국을 한 나라라는 자존심과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죽음도 하늘이 개입하여 죽음 역시 신비롭게 했지만 장례절차가 편안하지 않은 후계구도 혹은 왕의 사후에 복잡한 정치상황이 암시된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다음왕은 뱀의 세력 혹은 남해왕의 세력, 석탈해 그리고 육부족의 복잡다단한 세력이 오등분한 권력의 분화가 있었지만 아들인 남해차차웅이 왕위를 계승하고 다다음에 석탈해가 왕위를 차지하는 것 등을 미루어보면 박혁거세 이후 복잡한 상황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