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보다 업그레이드된 제왕운기의 단군신화
삼국유사보다 업그레이드된 제왕운기의 단군신화
제왕운기의 집필 경위와 당대사회
먼저 제왕운기가 편찬된 경위를 살펴보자. 이승휴는 『제왕운기』의 저술 동기를 고려, 즉 당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조군왕세계연대」의 말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의 무신의 난과 30여 년간에 걸친 몽고와의 항쟁으로 왕권이 약화되던 시기에 살았다. 몽고와의 강화로 인해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되면서 자주국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태였다. 원나라의 세력에 편승한 부원세력가의 반사회적인 책동에 의하여 국내외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신진사인(新進士人)으로 등제해 직간과 파직으로 연속된 정치활동을 하였다. 『제왕운기』도 1280년 충렬왕의 실정과 부원세력가들을 비판한 10여 건의 폐단을 상소했다가 미움을 사 파직되어 은둔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그는 당대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로 책을 썼을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왕권의 강화를 통한 국가질서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으므로 실정한 군주, 왕권에 도전한 신하를 드러내어 폄론하고, 군신이 각각 갖추어야 할 유교적 정치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제왕운기』는 난세에 정치·사회 윤리의 재확립을 목표로 한 것이며, 그 가치기준을 역사에서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다. 그것은 원나라에 대한 저항의식의 소산이었다. 당시 현실의 모순은 궁극적으로는 원나라의 침략과 정치적 간섭에서 기인하는 것이었음을 그는 누구보다도 명확히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의 정치적·군사적 열세로 인해 원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은 불가능하였다.
이승운은 두 차례에 걸친 원사행(元使行)을 통해 당시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대제국을 형성해가고 있던 원나라의 위력을 직접 목도하면서 우리의 문화마저도 그 속에 흡수되어버릴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자국의 강역과 역사전통에 대한 강렬한 자각의식이 싹터 역사서술로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층 달라진 단군신화
단군신화는 단군의 뿌리인 탄생신화부터 달랐다. 삼국사기에서는 단군의 탄생이 천상신 환인의 서자였던 환웅과 인간으로 화한 곰 즉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술하였다. 그러나 제왕운기에서는 환인의 적자인 환웅인, 단웅천왕의 손녀와 지상신인 박달나무신 즉, 단수신과의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난다. 천상정자출신의 손녀딸이라는 정통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이름도 제단을 뜻하는 단군(壇君)이 아니라 박달나무라는 목신의 의미가 들어있는 단군(檀君)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유사나 사기에서 보이는 조선의 후예를 부여와 고구려에 국한하지 않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옥저, 예맥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고대 신화 유형에서는 애니미즘의 일종으로 보이는 동물을 인간의 조상으로 여기는 수조신화(獸祖神話)가 나타났다는 것은 수렵문화와 밀접한 관련,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의 시조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을 모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퉁구스족의 경우 곰을 인간의 조상으로 하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승윤의 제왕운기에서 천상신과 지상신의 결함이라는 한 차원 높은 우리민족의 조상 설정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자존감을 갖게하는 시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운이 그러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천왕의 손녀와 단수신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나?
환인의 적자 환웅이 인간 세상을 갈구하여 천신들을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이 분이 환웅 천황이다. 환웅 천황은 풍백ㆍ우사ㆍ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그런데 단수신이라는 자가 지상신으로 군림하고 있어서 환웅이 자신의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단군을 낳게 했다는 것이 제왕운기의 내용이다. 굳이 우리민족의 조상을 천상신으로 연결시킨다면 환웅을 단군의 아버지가 아닌 외증조부로 말할 수 있다.
이승운의 제왕운기에서 기존의 삼국유사와 달리 신랑신부가 바뀐 것은 사소한 차이 같지만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드러난다. 단군신화처럼 천손강림설화는 일반적으로 외래집단과 토착집단의 정치통합 과정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삼국유사가 그린 정치통합은 개념 필수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외래집단의 주도권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땅의 주인이었던 박달나무신이 외래의 세력인 천왕의 손녀를 취함으로써 전통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손녀에게 수면제와 같은 약을 강제로 먹여 재운 뒤에 박달나무신과 결혼을 해야만 했던 천상의 적통이며 절대강자인 환웅의 상황이 짐작이 된다. 외부세력의 힘이 토착세력보다 약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로써 부계 사회의 정통성을 지키게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제왕운기의 단군신화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