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공부

김수로왕 신화<金首露王神話>

북스톰 2024. 2. 10. 00:27
반응형

김수로왕 신화<金首露王神話>

 

가야의 개국신화와 수로왕

    이 신화는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탄생과 생애,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신화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개의 황금알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한다는 건국 신화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락국기(駕洛國記)>에 실려 전한다. 금관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의 탄생과 혼사, 그리고 즉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김수로왕신화단군신화혁거세신화혹은 동명왕신화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건국신화로서 김수로왕신화는 왕국에 신성함을 부여하고, 아울러 왕권 자체를 신성화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의 뜻대로 지상을 다스리는 첫 군왕이 곧 김수로왕이고, 그러한 왕을 받들고 있는 거룩한 왕국이 곧 금관가야라는 이념이 다른 건국 시조신화와 마찬가지로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한편, 신화 내용이 직접 신에게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매년 삼월 계욕일에 즈음하여 구지봉에 수백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모인 구간(九干)은 직접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에 응답하였고, 그 결과 신의 내림을 받았다. 그 목소리는 황천(皇天)이 나로 하여금 이곳을 다스려 새로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기에, 내 여기에 내리고자 하노라.”고 하면서 구간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며 그를 맞이하기를 요구했고, 하늘의 신이 시키는 대로 실행하여 신을 맞이한 부분이 김수로왕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수로왕 신화의 축제적인 특색

    이 신화의 특색은 신이 직점 지도자를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다. 신이 직접 이야기한 신 자신에 관한 얘기가 곧 이 신화의 핵심이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서 옮긴 것뿐이다. 신화의 하늘의 전언이라 할 수 있는 소위 공수가 나타난 것을 문헌에서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김수로왕신화이다. 그런 뜻에서 이 신화는 한국신화가 지닌 기본적인 성격을 성문화(成文化)해서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특색은 사람들이 모여서 신맞이 행위를 하는 신화라는 것이다. 신내림을 받드는 신맞이 신화라는 성격은 축제의 한마당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김수로왕신화는 신이 하늘에서 소리하면서부터 지상에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이란 사람들이 공수를 받들어 노래하고 춤춘 부분이자 육체로 연행된 신화란 점에서, 이 신화는 굿과 짝지어져 있다. 신화가 말로써 하는 풀이라면, 그 풀이가 사실은 말에 담겨 표현되기 이전에 행동에 담겨 표현되어 있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 사이에 갈등이 있었나

     육가야 중에서 역사서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는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뚜렷하다. 먼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를 중심으로 했던 가야계 고대국가인 금관가야(金官伽倻)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따르면 개국 군주는 수로왕이 나라를 세우고 구형왕 대에 이르기까지 490(~ 532) 동안 유지되었으며 10대의 왕이 있었다. 대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10대 구형왕까지를 왕조로 본다. 그런데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있었던 가야 여러 나라 중 하나. 흔히 삼국유사에서 대가야로 알려져 있으며, 가야 후기의 가야 일대 정세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조는 이진아시로 <지리지>에 의하면 520년간 존속했었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전성기에는 지금의 영호남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후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치이다가 세력을 잃고 562년 신라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두나라의결속이나 신라와 백제에 공동전선을 펼쳤다는 등의 구체적인 기록은 전혀 없다. 비록형제이지만 두 왕들은 밀접한 관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야 건국 신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삼국유사에 수록된 <구지가>와 얽힌 6개의 알 신화로 유명하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에 사람들이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알 6개가 내려왔고, 알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난 이가 김수로였으며, 나머지 알 5개에서 태어난 아이가 각자 나머지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다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최치원이 썼다는 석이정전을 인용했다고 하며 여신인 정견모주 전설이 있다. 천상신 아비가지와 지상신 정견모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육가야의 왕인 것이다. 여기서 김수로는 이비가지의 아들로 이진아시와 형제였고, 이름이 뇌질청예(惱室靑裔)였다. 대가야를 세운 아진아시가 형이고 외질청예인 수로왕이 둘째로 나온다. 초기 김해에 위치한 금관가야국과 후기 강해진 고령 대가야 중심의 신화로 보인다.

     후에 수로왕 계열은 신라 사회에 편입된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인 661년에 조서를 내려 외가의 시조인 수로왕의 묘를 신라의 종묘에 합해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는 문무왕의 모친인 문명왕후가 김유신의 여동생이었으며,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의 증손자였기 때문이다. 즉 문무왕 역시 신라의 국왕이면서도 외가 쪽으로 수로왕의 직계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