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공부

작제건에 대하여

북스톰 2024. 4. 1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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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제건에 대하여

 

고려태조의 조부, 작제건

     작제건은 왕건의 조부로서 추존된 의조(懿祖)이다. 그는 신라 말기 송악 성주를 지낸 신라 시대 하위 귀족으로, 역시 추존된 국조의 아들이다. 고려왕조실록(高麗王朝實錄), 성원록(高麗 聖源錄)과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 등에는 그의 성이 왕씨(王氏)라고 나와있고 정확한 그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는 태조(太祖)의 할아버지로 이름은 작제건(作帝建)이라고 하나 이는 고려 의종 시기 전설과 민담집을 엮어 만든 김관의 등의 편년통록, 민지의 편년강목 등에 나오는 이름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왕국조와 정화왕후의 아들이다. 918년 고려 왕조의 성립 이후 묘호는 의조(懿祖), 시호는 경강대왕(景康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작제건 설화

     아버지는 왕국조이고, 어머니는 송악의 부호였던 강씨(康氏) 보육의 딸 정화왕후이다. 의조 작제건의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 ()나라 선종(宣宗)의 나이 13세 때는 목종(穆宗)의 재위 때인데 장난 삼아 황제의 용상에 올라가 신하들에게 절[]하는 자세를 짓거늘 목종(穆宗)의 아들 무종(武宗)은 마음으로 그를 꺼려하더니 무종(武宗)이 즉위하매 선종(宣宗)이 궁중에서 해()를 만나 기절하였다가 다시 소생하여 몰래 빠져 나와 멀리 도망하여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고루 세상의 험난함을 맛보았다. 염관(鹽官)의 안선사(安禪師)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대우가 특히 각별하였으므로 염관(鹽官)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또 선종은 일찍이 광왕(光王)이 되었는데 광군(光郡)은 곧 양주(楊州)의 속군(屬郡)이요 염관(鹽官)은 항주(抗州)의 속현(屬縣)이니 다 동해에 접하여 있어 상선이 왕래하는 지방이었으므로 화를 무서워하여 항상 깊이 숨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산수를 유람하는 것으로 명목 삼아 상선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선종이 마가갑(摩訶岬) 양자동(養子洞)에 이르러 보육(寶育)의 집에 머무를 때 두 딸을 보고 기뻐하며 옷이 따진 곳을 꿰매 주기를 청하였다. 보육(寶育)은 중국에서 온 귀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큰딸로 하여금 명에 응하게 하였더니 문턱을 넘다가 코에 피가 흘러나오므로 진의(辰義)를 대신으로 드디어 천침(薦枕)하게 되었다. 기월(期月) 동안 머무르다가 임신하였음을 깨닫고 작별할 때 말하기를, <나는 당() 나라의 귀성(貴姓)이라.> 하고 활과 화살을 주며 <아들을 낳거든 이것을 주라.>고 하였다. 곧 아들이 태어나니 작제건(作帝建)이다.

 

다른 설화의 작제건

     아이가 태어나 작제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어린 나이에 벌써 궁술에 통달했다고 한다. 성장한 후에 상술한 대로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배에 올랐다. 그런데 뱃길에 안개가 너무 자욱해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할 지경이 되어 뱃사람이 점을 쳤는데 고려인을 내려놓고 가라. 그래야 순풍이 분다는 점괘가 나왔고, 마침 그 배에 타고 있던 고려인은 작제건이었다.

    결국 작제건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밑이 바다가 아니라 외딴 섬의 해변이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배가 떠나자 한 노인이 나타나 나는 서해의 용왕인데 내가 그대를 만나고자 붙잡았다. 근래에 늙은 요호(妖狐)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모습으로 나타나 구름과 안개 사이에 해 별들을 벌여놓고는 나각(螺角)를 불고 북을 치며 음악을 연주하며 와서는 이 바위에 앉아 옹종경(臃腫經)을 읽어대니 내 두통이 극심하다. 활로 그 요호를 잡아달라고 하니, 작제건이 승낙해 요호를 잡으러 갔다.

     하늘을 날아오는 불상의 모습이 보이자 작제건은 눈을 감고 활을 쏘아 맞추었는데 맞아 떨어진 것은 과연 늙은 여우였다. 용왕은 감사를 표하며 작제건을 당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하니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고 아버지는 황제가 되어 자식을 많이 얻었을 테니 가봤자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나는 동방의 왕이 되길 원하니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용왕은 왕이 되려면 ''자가 붙은 이름으로 3대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본인은 끝까지 왕이 되지 못했으나 훗날 손자 왕건이 옥좌에 앉아 아버지 용건, 할아버지인 작제건을 왕으로 추증했으니 그말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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