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전상국의 <동행>

북스톰 2023. 8. 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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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의 <동행>

 

어색한 동행

    작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한밤중에 눈길을 걸어간다. 그들은 춘천에서 와야리를 향해 걷고 있고 그 중간에 구듬치라는 험준한 고개가 가로놓여 있다. 그들은 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에 그것도 밤중에 달빛도 없는 상황에서 눈길의 동행을 하게 된다. 키 작은 사내가 먼저 서둘러 빙 둘러 가지 말고 고개를 넘어가자며 길을 잡자 큰 키의 사내는 묵묵히 그를 따라 걷는다. 처음에 그들은 눈에 젖은 바지 가랑이에 눈을 털어가며 걷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지는 젖고 얼어서 그들의 바지 가랑이에서는 사각거리다가 데걱데걱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된다. 와야리에 가는 길을 험한 길로서 허위허위 서둘러가는 최억구는 사내는 물에 빠져 온통 젖어 몸이 얼었지만 시렵지 않다면서 자신도 의아해한다.

    공무원이긴한데 자신의 정체와 와야리에 가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어정쩡해하는 큰 키의 사내는 옷섶에 마치 권총이 있는 것처럼 조심스레 행동을 하면서 최억구를 살피며 김득칠의 살인사건 현장에 갔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형사임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형사는 폐병으로 각혈을 하는 형사이다. 이 형사의 캐릭터는 이처럼 아이러니하면서도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 형사와 동행한 최억구는 한층 더 비극적이다.

 

혹한 속의 화해

    자아와 세계와의 화해가 전혀 불가능했던 최억구에게 형사가 화해의 제스추어를 보냄으로써 내적 외적으로 충분히 죄값을 받은 비극의 주인공인 그는 세계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표면적 스토리라인의 주인공은 작중에 또다른 이야기축의 중심인물인 형사에 의해 용인됨으로써 소설의 궁극적인 완결미를 갖추게 되지만 형사의 성격자체는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큰 키의 형사는 폐병이 심각한 상태이면서 살인범을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이다. 동시에 살인범을 용서해주고 놓아주게 된다. 이 두 가지 캐릭터의 액션에는 객관적 설득력이 결여된다고 하겠다. 자신도 죽음에 임박해서 최억구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면 험한 눈길을 걸어가던 중에 심각한 병의 증세가 나타나서 최억구가 그를 구해준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모티프가 부족하거니와 그렇지 않고 아직 그가 견딜 만한 정도로 폐병을 앓고 있었다면 그가 최억구를 놓아줄 정도의 심리적 모티프가 작중에 안배되었음직하기 때문이다. 견디기 힘든 혹한 속에서 두사람은 조금씩 경계가 무너진다. 엄청난 추위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경계심도 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위의 세계인 범죄와 처벌보다는 현실적인 추위의고통속에서 연민이 작동되었는지도 모른다,

 

시점과 인물의 이미지

    이 작품은 삼인칭 주인공 시점이기 때문에 모든 초점은 주로 최억구에게 맞추어져있다. 만일 삼인칭 보조인물 시점이었다면 형사의 입장에서 서술화자 최억구를 관찰했을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사가 자신의 내면적 심리 변화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방법은 자신이 특정한 대상을 향해 자신의 지각을 드러내는 행위로써의 소위 초점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가령 토끼를 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최억구를 체포하지 않는 행위 사이의 결락을 메워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의 심리변화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그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과정이 작품에 안배되지 않은 점이 형사의 마지막 행동을 기대밖의 결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 보완책으로서 작품의 마지막에 형사의 독백이나 대사가 있었다면 독자에게 좀 더 친절한 텍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행󰡕에서는 그렇게 서술시점이나 대사장면으로 형사의 모티프를 삼지 않고 또 다른 방법으로 작품에 복선을 장치했다.

 

이미지가 의미로

    그런데 동행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형사에 의해 이루어진 화해의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동행은 단단한 이야기 구조의 단편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소설의 제재에서 오는 이야기의 견고함이다. 이 견고함은 여행 플롯과 동행자인 형사의 내면세계라는 두개의 구조를 완결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형사의 내면 심리의 모티프로서 작용한 것일까?

    소설의 문장 기술은 통상 서사와 묘사로 이루어진다. 동행에서는 서사구조로서는 형사의 최억구 포기라는 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개연성은 미비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작가가 어떤 사물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집중적으로 묘사를 했느냐가 남은 문제의 관건이 될 수 있다. 작가가 관심을 집중시켜 서술한 묘사는 작중인물의 심리적 모티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묘사된 사물이 작품 내에서 복선이나 계기적 기점이 될 만한 것들, 그것은 안정된 구조 속에 놓여진 상징들로써 이른바 소재들인 것이다. , 힘든 길, 구듬치 고개, 언 바지, 떨어지는 쌓인 눈, 휘어지는 소나무 가지들, 최억구의 이 사이에 끼었던 장갑털실, 어린 최억구가 겪은 광속과 감옥의 어둠과 추위, 형사가 후회하는 어린 시절의 무서움과 용기에 대한 희구 등등이다.

    먼저 눈의 이미지는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는 색깔과 모습에서 무차별성, 화해, 용서 등의 이미지를 암시하고 최억구의 바지가랑이를 얼리고 발과 몸 전체를 얼게 함으로써 고통받는 죄인의 죄값을 치른 모습을, 또한 시종 눈이 쌓인 소나무 가지에서 무너져내리는 모습에서 형사가 최억구를 놓아주게 되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추위와 어둠은 과거 최억구가 김득수와의 갈등에서 겪게 되는 광속과 감옥의 이미지가 구체화되었고 이 사이에 낀 털실과 감옥 생활과 자살로 이어지는 운명성이 폐병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형사의 운명성과 동질감을 이루어내고 있다.

    결국 󰡔동행󰡕에서 최억구라는 근대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희생양이 역사적 시간을 통하여 그 죄값을 치르고, 실존주의적 삶이라는 문제 앞에 놓여있는 그 개인적이 공간에서는 폐병으로 죽어가는 형사라는 개체에게 있어서 동질의 존재이고 얼마든지 용인되는 것이다.

    최억구의 죽음은 역사적 질곡에 의해 서른 여섯해의 짧은 시간을 접어야 하는 비극이라면 형사의 죽음은 생노병사의 존재론적 비극에 의한 한정적 시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을 앞둔 두 동행자의 공간은 그것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 위해서는 죽음으로 가는 여로의 동행이 아니라 나와 너가 화해하는 동행으로 의미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화해의 조건과 배경으로서 󰡔동행󰡕의 도처에 놓여 있는 상징적인 장치들은 작품의 완결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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