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은희경의 변곡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은희경의 변곡점
고독 혹은 소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중단편집
내방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은희경의 소설집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포스팅을 한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은희경의 아홉번째 책이다. 2006년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었던 표제작을 비롯하여 중단편 총 6편이 수록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포함한 가족관계 속에서 삶과 정체를 탐구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현대의 고독하고도 분열적인 인물을 다루고, 일상의 국면에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그녀의 섬세한 서사가 특징적인 소설집이다. 작품집은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표제작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그리고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모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속도감있는 문체로 단편의 묘미를 살린 작품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 드러나듯 속도감 있는 문체와 과거와 현재를 관류하는 서술은 작가의 필력을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준다. 일례를 들면 아래와 같다.
-밥알은 달게 씹혀 목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내 몸이 미칠 듯이 환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장이 춤추듯 꿈틀거렸으며 뱃속이 흐뭇할 만큼 따뜻해졌다. 자, 네가 그토록 원하는 탄수화물이다. 숟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나는 이상한 감동으로 국밥을 퍼먹고 있었다. 굶주린 자식을 먹이는 아비의 마음을 넘어 고통받아온 몸을 구원하는 메씨아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자포자기, 그리고 자기 파괴적이며 충동적인 악의가 팔에 속도를 붙였다. 잔칫집의 초대받지 않은 식객답게 입가로 국물까지 흘리면서 나는 탐욕스러운 속도로 순식간에 국밥 그릇을 깡그리 비우고 말았다. 국물까지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자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상복 여인이 다가와 말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p.111
작품집의 전반적인 분위기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서른 다섯번째 생일날,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전작이었던 장편 『비밀과 거짓말』이나 소설집 『상속』의 표제작에서 은희경이 바라보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어릴 적 아버지와 만나던 이태리 식당에 걸려 있던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잊을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는 뚱뚱한 모습만을 보였고, 이제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아버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매일 먹는 밥을 거부하는 다이어트란 결국 인간의 문명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은, 끝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달라진 모습으로 빈소를 찾고, 아버지는 「비너스의 탄생」을 유품으로 남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현실에서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 음식에 대한 거부와 연결된다.
일상의 번민을 지고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착종(錯綜)이다. 착종이라함은 모든 게 마구 뒤석여버린 것이다. 서사를 따라 면밀하게 읽다보면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일정한 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의심을 찬양함>내듯이, 하나의 소설 안에 허구적인 설정이 겹겹으로 등장한다. 바깥의 소설 속의 현실보다 더 허구적이고 황당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소설 속 삶과 현실은 오롯하게 다른 차원의 삶으로 열리며 진정성을 얻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작품집의 말미에서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로 말하자면, 질문과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인 채로 아름답고 낯설고 섣부른 전망을 거절한다는 의미에서 끝내 허망하기까지”하다고 평가한다. 선 굵은 서사 대신 독특한 서사와 인물을 통해 작가는 범상치 않은 일상과 현실의 단면을 극적으로 클로즈업함으로써 냉소와 위악 대신, 조용하고 나직한 공감과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수사든 서사든 무색무취하게 느껴지지만, 삶과 현실을 관통하는 힘은 작가 은희경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