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 환상체험적 소설

북스톰 2023. 9. 2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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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환상체험적 소설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장르가 가능한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장르가 가능한지 아닌지의 문제보다 과연 이제하가 리얼리즘적 입장에서 소설창작을 추구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한 논의의 초점이 된다면 그러한 근거를 찾는 작업은 필수적일 것이다.

     이제하는 기존의 작가들, 즉 소위 리얼리즘 작가들의 수법에 환멸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그러한 작가들을 <그들>이라 지칭하면서 그들이 즐겨 쓰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우선 한 발 물러서서 같은 방법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창작방법 모색 끝에서 얻어낸 결론으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발표하고 마침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다.그리고 그가 한발 물러서 잡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의 단초는 우리의 개인적인, 집단적인 혹은 민족적인 한이라는 정서였다.

 

작가의 문학관과 그의 고백

     “.....중심적인 것을 간추리면 한()과 체념과 여분의 <해학> 같은 것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한과 체념은 동시대의 주변 이웃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릴 때 제게 보여준 생활태도가 거의 일방통행적으로 제게 스며들게 한 인식입니다. 이 땅의 시간과 공간을 거의 장악해온 그 두께라는 것은 너무나 엄청나서 어떤 합리적인 것으로도 뚫거나 스며들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중략)....그 전통의 두께를 녹이고 길을 뚫어 과거라는 먼 끝머리의 광활한 천지로 나서지 않으면 이 땅의 문학에는 가능성도 도리도 없다.”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이제하가 환상적 기법에서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돌아온 곳은 샤만을 통한 한의 부분이다. 환상을 다 지우지 않고 더러 간직하면서 전통적인 기법을 찾아내는 데에는 샤만의 신비한 구석이 가장 손쉬웠을 것이다. 아니면 보다 전통적인 국면을 찾다가 샤만으로 돌아섰고, 샤만을 통해 세계의 타락한 부분을 조명하는 보다 객관적인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이 소설이 소설에로 되돌아 왔다는 것은 소설의 기본 구조에로 되돌아 왔다는 뜻이자 동시에 우리 소설의 기본 틀에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제하가 창작 기법의 측면에서 <물러섰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맞서다>의 의미는 유사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규정한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관을 고수했다는 뜻이다. 그의 소설은 전통적 소설로 되돌아온 것이 아니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의도하는 예술과 그 예술이 피어나는 공간으로서의 현실과의 관계에서 아이러니컬한 부분에 봉착해 있음을 정직하게 토로한 것이다.

 

한을 벗어나는 환상체험으로서의 소설

     그의 소설은 현실로 들어가려고 하면 할수록 현실로부터 나와야만 현실 속의 무언가를 말할 수 있고,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현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훼손된 세계를 혹은 타락한 인간들의 관계를 환상을 통해 드러내는 작업은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타락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벗어나 환상을 사용해야하고, 훼손되었기에 환상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현실 속으로 들어가 진실된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제하가 찾은 것은 우리적인 것, 그 중에서도 중심적인 <한과 체념>이라는 대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색하는 환상적 리얼리즘과 우리적인 샤만과의 통합이 보다 우리 소설적인 것이 된다. 이때 동원된 환상은 하나의 문학수사학적인 장치가 되고 그것을 해석하는 작업은 상징 해석적인 방법과 유사하다할 수 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의 환상적 상징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예술과 현실의 아이러니인 환상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의 문제는 그의 환상을 수사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의 미학은 작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다름 아니다. 이제하에게 이러한 희구는 훼손된 세계를 자기의 시각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모습으로서의 하나의 환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비쳐지는 이제하 소설의 세계는 난해한 환상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간의 묵계적인 전제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환상의 개연성은 독자가 한 작가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환상화한다는 것, 그것은 현실이라는 것이 <저기 바깥에 그냥 서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존재이유와도 흡사한 것이다. 이처럼 이제하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의미를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욕망의 충족이나 불만족한 현실에 대한 정신적인 수정 혹은 대리만족의 개념으로 설정하면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작품에 속속 드러나는 환상적인 부분들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가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나 행동이 소설 속에 나타나게 되면 소설이라는 하나의 구조물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작품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제하의 경우에 있어 작품의 사건이나 인물행동의 어떤 부분이 환상화되었다면 그것은 더욱 그 의미가 특별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선택된 상황이나 행동은 이미 사회 속의 존재물이 아니고 예술구조 속의 의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또한 특수하게 환상이라는 장치를 동원하는 부분은 그 의미가 더욱 좁혀지게 되는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제하가 스스로 창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한 글에서 그는 문학이란 사회와의 결렬된 자아가 느끼는 허무감 그리고 반항과 도전이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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