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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표해 3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판매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벽오금학도』는 풍류도인 농월당 선생과 그의 손자인 백발동안의 강은백, 신통력을 지닌 누더기 노파, 피해망상증 시인 김도문, 외엽일란도를 그리는 수묵화의 대가 고산묵월 등이 정교하게 직조된 사람관계망을 만들어 스토리를 펼쳐내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풍류도인 농월당 선생의 손자 강은백은 아홉 살 나던해에 어느날 우연히 도로무기소라는 마을의 호수에 갔다가 우연히 신선의 마을에서 사흘을 노닐다 돌아온 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린다. 만물에 편재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한 그는 환상의 그림 <벽오금학도>를 들고 돌아온다. 그는 그림 속을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선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언을 듣는다. 강은백은 선계의 그 황홀함을 잊지 못하여 평생을 다시 그 선계로 들어가기 위해 그 그림 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편재된 세상 말하자면 누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될 수 있는 힘의 세계로 가기위해 그림을 넘나드는 사람을 찾는다. 그는 그 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간다. 그의 집안은 좀 이상 했다. 할아버지는 신선과 같은 존재였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가끔 집에 오면 동내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 할머니와 손자가 살았고,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서 무소식. 어머니는 은백을 낳자마자 황달로 죽었다. 선계에 다녀온 후 아버지가 나타나서 서울로 데리고 간 것이다. 계모는 은백을 매우 싫어했다. 은백은 대학생이 되었다. 누명을 쓰고 그 후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의사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단순하게 선계인 오학동의 이야기지만 망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퇴원을 시키고, 그는 정육점을 하며 그림을 넘나드는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결국 한 노인의 도움으로 선계에 다시 들어가는 내용을 담은 스토리이다.
작중에 키워드 <편재>
작중에서 노파가 구슬리듯 대학생을 재촉하고 있었다. “편재(遍在)라는 것이 되는 마을입니다.” 대학생이 가까스로 입을 열고 있었다. “편재라니.” “사전적으로는 두루 퍼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학동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집니다. 저 자신이 모든 사물과 두루 합일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모래알이 될 수도 있고 물방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민들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태양이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직유(直喩)의 마을이라면 거기는 은유(隱喩)의 마을이죠.”
작중의 선계는 현실의 시공과는 성질이 다른 시공이다. 가령 현실에서 강은백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그쪽 세상에서 지은 인연에 의해 무덕선인이 구해서 이쪽 세상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선계에서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기만 하면 그 어떤 대상이든 완전 합일이 가능한데 그것이 바로 편재이다. 편재는 두루 퍼져있따는 뜻으로서 우주 만물 중에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각기 나름대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곧 우주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갈 통로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편재라는 것이 확률과 중첩에 의해 만물이 존재한다는 양자론의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가 관찰을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없는 희한한 상태. 우리가 직접 관찰을 시도하려고 할 때만이 비로소 특정한 상태가 결정되는 세계인 것이다.
강은백의 귀환
강은백이 어렸을 적 경험한 편재의 세계는 너와나의 구별이 없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번뇌와 망상이 없는 이상적인 곳이다. 벽오동에서 금학도를 받아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주인공이 다시 그 이상계로 돌아가기 위해 겪는 여정을 다루는 소설이다. 현실세계에 살아가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설속에서 말하는 편재의 세계는 다분히 이상적인 곳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현실계에 살고 있으면서 이상계에 다가가려는 주인공의 여행을 통해서 지금 이곳, 현실계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행태를 비판하며 반성을 촉구한다.
알량한 문명을 이룩한뒤 자연과 소통할 줄 모르고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려 드는 현실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편재의 세계'에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편재 가능한 세계와 편재 불가능한 세계의 구분은 약간의 모순이 있다. 두 세계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고 벽오금학도를 통해서 저쪽 세계로 넘어간다고 한다면 편재 가능한 세계 역시 편재가 불가능한 불완전한 세계가 되고 만다. 편재가 안되는 이쪽 세계는 여전히 예외로서 남게 되므로 편재 가능한 이상적인 세계의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그곳 역시 현실계와 똑같이 편재가 안 되는 곳이 되고 만다.
소설 속에서 금학도를 통해 저쪽 세계 즉, 편재가 가능한 세계로 넘어갔다기 보다는 예전에 편재가 불가능한 이쪽 세계 역시 편재가 가능해진 세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강은백은 편재가 불가능한 세계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두 세계가 원래부터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은백의 귀환이 이루어진다. 강은백은 오학동에 들어간 뒤 불과 며칠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신선이 준 그림인 〈벽오금학도〉를 가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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