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지만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식인 스토리를 담아낸 <구의 증명>에서 작가 최진영은 색다른 독서체험을 독자에게 건네준다, 이 작품은 2015년에 출간된 중편소설이다. 연인 사이인 구와 담은 어린 시절부터 첫 경험, 결혼, 임신, 육아 등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그러나 구는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빚을 진 후 도망치다가 살해당하고, 담은 구의 시체를 발견한다. 담은 구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구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삼키기 시작한다. 결국 구의 살점까지 먹으며 그를 자신의 몸에 흡수하려 한다.
작중 주인공 담은 사랑하는 연인, 구의 죽음 이후 겪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를 고뇌한다. 담은 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담은 구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녀는 왜 구가 죽었는지, 그리고 구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이지는지 고민한다. 그녀는 구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의미,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런식의 전개는 사랑과 죽음, 애도와 기억에 대한 극단적이고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자신의 죽음과 비교할 수 없이 슬프고, 정신이 사라지고 영혼이 떠난 자리에선 연인의 시체라도 너무 소중하다고 말한다. 또한 담의 입장에서 현대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식인보다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 본다.
현실과 인물의 상징
구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으로, 어린 시절부터 담과 함께 살아왔다. 가난하고 빚더미에 짓눌린 삶을 어렵사리 살다가 사채업자에게 살해당한다. 담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무능력함과 빚 때문에 그녀를 밀어내기도 하지만 죽기 전에 담을 그리워한다. 한편 담은 구와 함께 자란 사이다. 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따라다니며 그를 지지한다. 구가 죽은 후에는 그의 시체를 먹으려 한다. 구와 함께 최후의 인류가 되고 싶어 한다. 살아도 죽어도 함께한다는 방식이 식인 행위조차 불사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담의 행위에는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절대 욕망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
인간수명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
이 책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후에도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솔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구와 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녀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 임신, 육아 등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과거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순수했는지 유려한 필체로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을 먹는다는 괴이하고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현대사회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구가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빚을 진 후 도망치다가 살해당하고, 담이 구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인간이 물건이나 돈으로 취급되는 점을 부각시킨다. 또한 담이 구를 먹는 씬에서 현대사회가 사람을 식인 행위보다 보다 더 야만적이고 잔인하다는 입장에 서기도 한다.
궁금한 것들
사람을 먹는다는 소재가 독자들에게 이성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도 공감되지 않는 것은 작가의 낯설게하기 기법에 불과한 것인지 궁금하다. 구와 담의 사랑과 애도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진정한 욕망이나 미래에 대한 꿈 그리고 그들의 성격이나 삶의 구체적인 배경에 모호한 점도 작품의 분위기를 판타지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애시당초 구와 담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지,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는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문화는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구와 담의 모든 행동이나 감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수학적 증명과 문학적 증명
구의 증명은 수학 용어로서, 구의 표면에 있는 임의의 네 점이 하나의 평면에 있을 수 있다는 정리이다. 이 정리는 19세기에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슈라프라이(Hermann Schubert)가 증명했다. 소설에서는 이 정리를 작가가 자신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담은 죽은 구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삼키고 살점까지 먹으며 그를 자신의 몸에 흡수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결합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두 몸이 하나가 된 것이다. 살아있는 담과 죽은 구, 담의 몸속으로 들어간 구 마지막으로 과거의 구 이렇게 네 개의 존재는 하나가 된 것이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구와 담이 하나의 평면에 있을 수 있다는 구의 증명을 상징적으로 형상화시키려고 한 것 같다. 작가는 구와 담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솔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감정이며, 죽음도 초월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그들은 서로를 기억하고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현대사회의 비인간적 가치와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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