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서 코난 도일은 어떻게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6. 7. 23. 06:15

본문

반응형

 

 

아서 코난 도일은 어떻게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아서 코난 도일은 자기 직업은 작가가 아니라 의사라고 말했다.

영국의 기사작위를 받은 소설가이며 본업은 안과 의사. 잘 안 알려졌지만 시도 많이 썼고 수많은 칼럼을 쓴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아서 코난 도일은 생전에 추리작가로서의 삶과 자기 소설의주인공이 셜록 홈즈르 ㄹ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그는 사실상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 소설물인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이며, 그 밖에도 잃어버린 세계로 대표되는 챌린저 교수 시리즈와 마라코트 심해 등의 근대 SF 소설들과, 〈백의단(The White Company)〉과 〈제라르 준장(Brigadier Gerard)〉 2부작 등의 역사 모험물을 비롯한 다양한 초창기 장르문학 작품들로 20세기의 대중문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짙은 색 머리를 가졌던 것이 확인되며 직접 만나본 당대인의 기록에 의하면 눈은 밝은 파란색이었다고 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셜록 홈즈로 엄청난 원고료를 받았 연극 영화도 무척 흥행했다. 코난 도일의 소설들은 1900년 이후 현재까지 영화로는 1200개 이상, 연극으로는 1893년 이후 1000개 이상의 작품으로 각색되었다. 아울러 1930년 이후로 라디오에서 현재까지 1000번 이상 각색되었으며 1888년부터 1965년까지 200개 이상의 모방 작품들이 출간됐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서 코난 도일은 자신이 100년이 지나도 셜록 홈즈를 쓴 작가로만 기억되면 자신은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말했다고도 전해진다. 실제로 아서 코난 도일의 원래의 직업은 작가가 아니라 의사이고 애초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과정

1859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으로 부친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교도의 후손인 잉글랜드인이었고 모친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계 영국인이다. 코난 도일은 어렸을 적부터 책벌레였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스토니허스트 칼리지를 거쳐 1875년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의 예수회 학교 스텔라 마투티나(Stella Matutina)에 다녔다. 17세 때이던 1876년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이때 에든버러의 왕립 식물원에서 식물학을 공부했고 단편소설 The Haunted Grange of Goresthorpe를 블랙우드 매거진에 투고했으나 거절당했다. 또한 이 시기에 서양 고전 문학과 영국 시인인 윌키 콜린스, 프랑스의 소설가인 에밀 가브리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난 도일이 애드가 알란포의 영향으로 추리작가가 될 씨앗을 잉태했다고 본다.

1877년 에든버러 병원의 의사 및 서기로 활동했다. 그런데 의사 스승인 게다가 벨은 수사 과학 자문을 맡았는데, 수사 과학은 관찰을 통해 알아내는 학문으로 심리학과 범죄학과 연관이 깊다. 또한 그는 법의학 연구에도 참여했다. 코난 도일은 그를 모델로 삼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셜록 홈즈를 창조하였다. 벨은 자신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셜록 홈즈의 모티브인 것을 안다. 1892년 8월에 벨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일이 "선생님, 저는 의심할 여지없이 선생님께 셜록 홈즈를 빚지고 있습니다...(중략).... 선생님께서 되풀이하여 가르쳐 깨우쳐주신 추리와 추론과 관찰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창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동년 12월 월간지 The Bookman에 벨이 쓴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이 코난 도일에게 진단 관련을 가르쳐줬다고 썼다. 1924년 코난 도일은 자서전에서 "벨을 연구한 후 내가 나중에 과학적인 이론을 세우려고 노력할 때 그의 방법을 사용하고 증폭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범인의 어리석음이 아닌, 자신의 장점으로 사건을 해결한 탐정."이라고 썼다.

1885년에는 진료하던 환자의 누나였으며 자신보다 2살 연상인 루이자 호킨스와 결혼했다. 루이자가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가 1906년에 사망한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1880년 그린란드 포경선의 의사로 8개월 동안 근무했고, 1881년에는 아프리카행 화물선의 의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의학 박사 취득 후 1882년에 포츠머스의 사우스시라는 지역에서 안과 병원을 개업해 일반의로 진료를 시작했지만 수입 거의 없었다. 이때 연락하면 지내던 의료 동료 중 제임스 왓슨이 있는데 셜록 홈즈 시리즈의 존 왓슨의 성씨 모티브가 되었다.

결국 생활고 끝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셜록 홈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첫 번째 장편 <주홍색 연구>, 두 번째 장편 <네 개의 서명>을 1890년에 출간하여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영국의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장의 눈에 띄어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편들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때 상당한 원고료를 약속받자 이후 도일은 본업이었던 안과 의사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이렇게 생애를 본다면 그의 작가으 길은 아마도 생활고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리작가로서의 성공이 왜 불만족스러웠을까?

아서 코난 도일은 본업이 안과 의사였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탐정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로 대히트를 기록한 작가다. 하지만 그는 정작 셜록 홈즈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이 오직 이 작품으로만 기억되는 걸 실패라고 여겼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그의 작가로서 삶이 의사로서 삶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운명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추리작가로서의 성공이 왜 불만족스러웠을까?

먼저, 의사로서 코난 도일의 삶은 사람을 직접 치료하는 중요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과학적 사실과 원칙에 따라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고, 창의력을 크게 발휘하기 어려운 분야다. 코난 도일도 의사로 활동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내면에는 더 넓은 창작 욕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작가로서 그는 단순히 의학 지식을 넘어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휘해 셜록 홈즈뿐만 아니라 챌린저 교수 시리즈, 초기 SF, 역사 모험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대중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영화나 연극, 라디오 등 수많은 매체로 각색되면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다. 이런 점에서 작가로서의 삶은 개인적 성취뿐 아니라 문화적 유산을 남긴 매우 의미 있는 업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도일은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 때문에 자신이 한 작품에만 묶인다는 사실을 꺼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영원히 문학사에 남을 수 있었던 건 분명 좋은 운명이었다. 오히려 의사로서의 삶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작가로서의 삶은 그의 재능과 열정이 만나 거대한 영향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이다.

결국, 아서 코난 도일은 의사라는 본업을 뛰어넘어 뛰어난 문학가로서의 운명을 타고났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가로서 삶이 더 긍정적이고 운명적인 선택임을 확신할 수 있다.

 

 

추리작가가 된 원동력

코난 도일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교 의과대학을 재학하던 시기와 또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호물선과 아프리카 상선의 선의로 승선했을 때의 경험, 신문 기사 등에서 나중에 셜록 홈즈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장르의 소설에 반영되는 인물과 사건에 관련한 영감을 얻었다. 홈즈는 그의 스승 중 하나이자 의사이면서 수사 과학의 선구자인 조지프 벨 교수와 그 외 몇몇 지인들의 성격을 합성하였고, 잃어버린 세계 등의 생물학 박사 챌린저 교수도 자신의 의과대학 시절 교수였던 러더포드 교수 등의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존 왓슨은 사실상 코난 도일의 가난했던 시절 연락하던 친구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심지어 그의 가족사까지도 왓슨의 가족사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코난 도일의 부친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것처럼 작중의 왓슨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형이 있고, 똑같이 결혼도 두 번인 것으로 되어 있다. 왓슨이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코난 도일의 경험이 반영된 것인데, 병원 경영이 좋지 않았던 코난 도일과 다르게 왓슨은 잘나가는 개업의인 걸로 묘사된다. 이는 코난 도일이 현실에서의 소망을 자신이 창작한 인물을 통하여 이루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역시 홈즈 옆에는 왓슨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메리 모스턴이 죽은 이후 왓슨이 좋은 값에 병원을 팔아버리고 홈즈의 옆에 와서 예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서술되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로 이전까지 소설로서의 위상이 불안정했던 탐정이 등장하는 형태의 추리 소설을 반석에 올려 놓았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포함해 추리 소설의 황금기에 셜록 홈즈의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탐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범죄자와 맞서는 주인공을 영웅의 위치로 만든 것도 셜록 홈즈이다.

 

 

나의 생각

아서 코난 도일은 원래 명문대 출신 안과의사였다. 의사로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했지지만, 경제적으로는 다소 어려웠다. 그런데 그는 의사생활중 동시에 추리소설, 특히 셜록 홈즈 이야기로 큰 성공을 거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는 어떤 삶이 더 행복했을까?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사실과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일에는 엄격한 규칙과 제한이 많아서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병원 문들 닫아야 한다. 반면, 작가로서의 삶은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라는 천재 탐정 캐릭터를 만들어 내며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그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었다.

아마도 그래서 코난 도일은 의사로서의 삶보다 작가로서의 삶에서 진정한 자신의 운명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삶이 그에게 더 큰 의미와 행복을 주지 않았을까?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며 행복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