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 추리작가 김내성(金來成)

김내성의 생애와 작가생활
한국의 추리소설가이자, 대중소설가로서 호는 아인(雅人)이다. 김내성은 1909년 음력 5월 29일 평안남도 대동군 남곶면 월내리에서 소지주였던 아버지 김영한(金榮漢)과 어머니 강신선(康信仙)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의 본관은 평양 김씨이다. 13세 때 집안에서 맺어 준 여자와 결혼했다가 평양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혼했다. 23세이던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원래는 독일 법학을 전공했지만 일본 유학생활 중 추리소설에 심취하여 일본의 추리소설과 서양 고전문학들을 섭렵하며 문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일본에서 머물면서 1935년 3월 일본 탐정문학 전문 잡지 『프로필』에 「타원형의 거울」을 신인 소개 형식으로 발표한 이후, 같은 해 12월 『프로필』 특별 현상 모집에 「탐정소설가의 살인」이 입선으로 당선되었다. 1936년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 김영순과 재혼하고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추리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6년, 일본 유학시절 일본어로 쓴 소설 "추리 소설가의 살인"을 개작한 "가상범인"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37년에는 김내성이 창조한 한국 최초의 명탐정 캐릭터 유불란 탐정이 처음 등장하여 활약하는 장편 소설 "백가면"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조광"지의 편집과 각종 좌담회 사회를 맡았다.
1939년은 김내성에게 의미있던 해로 조선일보에 추리 연재소설 "마인"을 연재했는데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아내의 친정이 있는 함경남도 안변으로 요양을 떠났고 이곳에서 해방 이후 김내성의 히트작이 된 "청춘극장"을 구상하게 되었다.
김내성은 1937년 『조선일보』에 중편 「가상범인」을 연재함으로써,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탐정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유불란’ 탐정을 등장시킨 소년 탐정소설 『백가면』을 『소년』에, 『황금굴』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1938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조광』 편집에 관여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이 「광상시인」, 「살인예술가」 등의 괴기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단편이다. 김내성은 1939년 장편 탐정소설 『마인』을 발표함으로써, 한국 추리소설의 계보를 이었다.
1940년대는 김내성에게 있어 흑역사로 남을 시대였다. 그는 각각 1943년과 1944년에 발표한 두 편의 첩보소설, 태풍과 매국노에서 유불란 캐릭터를 다시 등장시켰는데, 여기서의 유불란은 일제를 도와 경성에 침투한 서양과 중국의 스파이를 색출해내고, 마르세유에서 일제를 위한 첩보 활동을 펼치는 캐릭터로 변질되어 등장한다. 때문에 친일파로 몰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김내성은 여러 소설을 집필하고 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1946년 한국 최초의 어린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똘똘이의 모험"과 "마인" 역시 영화화되어 개봉했다.
1947년에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번안한 소설 "진주탑"을 집필,발표했고 1949년에는 안변 요양시절에 구상했던 "청춘극장"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청춘극장"은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지만 한국 전쟁이 터져 일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숨어지내던 김내성은 1951년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청춘극장"을 5부로 완결했다. 이듬해에 '대망'이라는 가제로 구상했던 소설 "인생화보"를 연재해 1953년에 완결했다. 1956년 "실낙원의 별"을 새로 연재 시작하였지만 1957년 연재도중 뇌일혈로 사망했다. "실낙원의 별"은 김내성의 큰딸인 김문혜가 아버지의 구상 노트를 바탕으로 후반부를 집필해 완결했다.

추리작가 김내성의 명암
김내성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추리문학가로서 활동한 최초의 작가이며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의 소설인 "마인", "똘똘이의 모험", "청춘극장", "인생화보" 등은 여러 차례 영상화 되었을 정도였고 여러 번 새로 책을 찍어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김내성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 1993년에 KBS에서 창사 20주년을 맞이하며 여명의 눈동자에 맞서듯 청춘극장을 드라마로 만들었으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할 정도로 참혹하게 망했고 이후로 김내성 작품에 대한 영상화는 맥이 끊겨졌다.
그러다가 2009년, 김내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김내성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판타스틱 최신호에서 김내성 관련 기사를 실었고 2009년 5월 판타스틱을 발간하는 페이퍼 하우스에서 김내성의 대표작 "마인"을 출간했다. 김내성의 단편들은 에도가와 란포나 유메노 큐사쿠가 떠오르는 이른바호러 미스터리가 많다.
에도가와 란포와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친교가 있었고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김내성은 추리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탐정 작가여, 어서어서 나오라! 그리하여 우리 조선 문단으로써 하나의 훌륭한 탐정 문단을 가지도록 하라!”라는 말도 남겼는데, 정작 그는 광복 후에는 추리 소설은 거의 쓰지도 않았다. 에도가와 란포가 전후 명맥이 끊긴 일본의 추리 문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면서 갖은 노력한 것에 비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에도가와 란포같은 인물이 없던 한국 추리 문학계는 1950년대 1960년대는 깊은 침체기를 겪었다.
채만식의 <염마>와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가 1930년대 중반 “한국 근대 추리소설사의 적장자”였다면, 그 뒤를 이어 1930년대 후반에 출현한 김내성은 한국 추리소설의 영광과 치욕을 한몸에 아우른 존재였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추리소설 전문 작가라 평가 받는 김내성은 1939년작인 <마인>에 탐정 유불란(아르센 뤼팽 시리즈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음차)을 등장시켰으나 사건 해결에 실패한 유불란의 탐정 폐업 선언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1940년대에 내놓은 <태풍>과 <매국노>, 아동모험소설 <백가면과 황금굴> 등에 다시 등장한 유불란은 일제 당국의 대동아공영권 이념에 따라 서양 첩보기관과 대결을 펼치는 “체제 협력적 선전 선동”의 도구로 전락한다. “김내성의 치명적인 과오는 일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야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명탐정 캐릭터를 사상적 지도자로 변질시킴으로써 추리소설의 근간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내성 재평가
김내성은 한국 탐정소설의 선도적인 개척자였으며, 탐정소설 이론을 작품으로 옮기고자 한 일제강점기 전문적인 탐정소설 이론가이자 동시에 작가였다. 그는 탐정소설 이론에서 탐정소설의 본질적 요건을 제시하였다. 탐정소설의 본질은 독자가 스로리에 놀라고 결국 소설을 다 읽으면 그 놀란 마음이 결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의 심리적 작용이라 정의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리작용에 따라 생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적 분위기로부터 낭만적 분위기로의 비약적 순간인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김내성이 제시한 탐정소설의 요건은 수수께끼의 제시, 논리적 추론, 의외의 해결이다. 김내성은 특히 ‘의외의 해결’을 탐정소설의 본질적인 요건으로 꼽았으며, 이를 위해서 『마인』과 같은 본격 장편 탐정소설에서 ‘1인 2역’, ‘주은몽이 쌍둥이라는 설정’, ‘꽃같은 미인 주은몽이 범인’, ‘공범 오상억의 설정’ 등 충격적인 반전의 효과를 노리는 기법을 차용하였다.
김내성은 탐정소설의 요건과 함께 탐정소설을 정통적 즉, 탐정소설과 변격즉, 방계적 탐정소설로 구분하여, 탐정미, 즉 어딘가 이상적이고 충동적인 분위기를 그린 변격 탐정소설에 매료되었다. 그는 변격 탐정소설이 문예 소설에 가깝다고 보고, 여기에 심취한 「광상시인」, 「백사도」, 「악마파」 등의 단편소설을 창작하기도 했다.
내 생각으로는 김내성의 문학관 중에 낯설고 신기한 것에 대한 낭만적으고 유미적인 것의 매료가 문학이라고 보는 낭만주의적 성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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