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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우물>은 중년 여성인 서술화자 나가 생일날, 막내 동생이 탄생하던 날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 지방 도시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나는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 연당집이 헐리고, 간질병 환자와의 만남 등을 통해 삶과 죽음, 생명과 소멸 등에 대해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어린 시절 자신이 목격했던 탄생과 죽음의 공간인 옛 우물을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옛 우물로 상징되는 여성의 자궁을 통해 영원히 순환되는 생명력과 여성성, 삶의 감추어진 의미 등을 깨닫는다.
소설 속에서 우물은 작중화자의 막내 동생의 탄생과 금빛 잉어를 통해 생명력을 상징하며 우물 속에 빠져 죽은 정옥을 통해 죽음을 상징한다. 결국 물은 삶과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우물 안으로 연결된다. 동생의 탄생은 정옥 죽음으로, 그 죽음은 다시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의 정체성 위기와 여성적 현존의 의미를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어머니의 자궁, 죽은 친구, 삭아가는 옛집, 매몰된 우물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면서, 탄생과 죽음의 불가해한 인간의 삶이 직관과 예감으로 서술된 것이 바로 <옛우물>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해산 날에 대한 회고로부터 물의 이미지들을 주워섬긴다. 출산 전에 이슬이 비친다거나 양수가 터졌다거나 문이 덜 열렸다거나 하는 산파와 할머니의 말에서 여성성과 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밤을 지샌 고통, 피와 땀과 젖 냄새가 비릿하고 후덥덥하게 뒤섞인 습한 공기 속에서 할머니는 피 묻은 짚과 태”를 태우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와 검댕이는 할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은 정화수 대접의 물 위에 날아와 앉는 장면에도 물의 미지지가 생명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대개 여성적 상징물들로서, 바가지, 무쇠솥, 장독대, 옛우물, 독, 물초롱, 흰 사발, 조왕각시 사발, 정화수 등이 물과 관련이 되어 있다.
그런데 노년의 어머니는 더 출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자궁은 말린 오얏처럼 쭈그러들어 더 이상 잉태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나는 그 늙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마지막 해산 과정을 엿보며 한 생명의 탄생을 만들어내는 물의 이미지와 여성적 생산의 가능성을 끝내는 자리에 있다. 즉 내가 어느덧 중년의 여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년이란 늙어가는 것이 서서히 나타나는 시기이다. 작중 주인공은 연금과 전원 주택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 스스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주인공이 강가의 찻집 유리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대목에서 확인하게 된다. 유리 밖의 자신의 모습이 유령처럼 그 물상 위로 비비적대며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문득 사라짐의 공포를 느낀다. 중년에 이른 주인공의 의식을 지배하는 죽음에 대한 예감은 자신의 모습을 유령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중에서 서쪽 하늘에 지는 저녁놀, 어린 시절, 멸종해 지구에서 볼 수 없게 된 도도새, 죽은 아버지, 죽은 친구, 신문의 부고란에서 마주친 그의 죽음, 곧 헐릴 퇴색한 연당집, 친구가 빠져 죽어 메워버린 우물, 옛우물과 함께 사라질 금빛 잉어 등등, 이런 것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죽음이 있다.
나의 여성적 정체성의 위기는 남성인 그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다. 한때 나를 애욕으로 사로잡히게 만들었던 그에게 달려가던 날들이 지나가자 여성으로서의 나는 여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작중에서 그녀는 이제 범상히 살아가는 내게 그의 흔적은 없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혼자 있는 시간에 뜻없이 내뱉는 탄식처럼 짧고 습관적인 성교를 한다. 그러나 모든 죽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소멸한 뒤에도 그들이 남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깃들이듯 그는 작중화자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 속에 남아 있다.
옛우물은 여러물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해산 날 정화수 대접에 담을 물은 생명력과 정화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양수, 침, 피 등은 생명과 연결되는 액체다. 생명의 근원인 깨끗한 물을 샘솟게 하고 그것을 감싸 안고 있는 우물은 여성적 창조와 생산의 상징을 담고 있다.
한편 사십대 중반 폐경기 중년 여자가 공포를 느끼는 죽음의 잔상들 어느 순간 옛우물에 산다는 전설의 금빛 잉어가 찬란하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금빛 잉어는 여성성의 내면에 자리한 생명력에 다름아니다. 금빛 잉어는 잉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런데 물의 이미지를 종합하는 우물은 삶과 죽음의 양면을 동시에 비추는 우물이 된다. 그 우물은 이미 소녀 시절에 메워지고 없지만, 그때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금빛 잉어를 향한 동경과 꿈은 수십 년이 지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암시는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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