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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손창섭 – 물의 이미지로서의 비

소설책

by 북스톰 2023. 11. 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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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손창섭 물의 이미지로서의 비

 

작품의 특이한 분위기와 작가의 의도

    손창섭 작가의 <비오는 날>은 대화가 자제되고 묘사에 비중을 둔 작품이다. 등장 인물간의 대화조차 서술 화자에 의해 전달된다.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화는 제약적이고 배경이나 서술화자가 일러주는 분위기에 의해 독자는 작품을 읽어나갈 뿐이다. 이때 독자는 작중인물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인물을 바라보며 그때 독자가 읽어내는 정보는 인물의 언급이 아닌 화자의 묘사 혹은 설명이 된다. 작품은 화자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단조로운 사건구조나 인물의 성격은 작품의 성격을 분위기 혹은 배경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게 마련이다.

    배경은 피난지인 부산에서 장마철을 보내는 세사람의 이야기로 압축된다. 영문학도인 원구는 대학동창인 동욱과 미술지망생인 그의 동생 동옥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비오는 날은 인물과 배경, 그리고 문체 등의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통일적이고 단일한 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 세계는 곧 상황 속에서 더 이상의 존재론적 자각이 불가능하다는 비극적 통찰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세계이다. 상황은 항상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내면의 풍경 역시 끊임없이 젖어 들고 있다. 인물은 하나같이 그 현실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채 변경으로 밀려 나가고, 우울한 중얼거림으로 시종하다가 마침내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피폐하게 전락하고 만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억눌린 주체의 음울한 내면을 경유하고 있으며, 그 또한 서술주체는 무화된 채 그와 같은 이미지와 동떨어진 것이 없는 완결성을 획득하고 있다.

 

 

비의 하강 이미지와 물의속성

    작중에서 불행한 인물들의 어두운 삶은 피난처인 부산의 후미진 집이라는 공간에서 주로 나타난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온, 장소에서 언제나 비는 축축하게 나리고 예전에 의료 수용소로 쓰였을 가건축물과도 같은 동욱과 동옥의 집은 당시 한계상황을 드러내 준다.

    부룩스와 워렌에 의하면 배경은 소설의 물질적 부분이며 장소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배경에 대한 묘사는 단순하게 사실주의적 입장에서 정확하게 묘사되었는가 보다는 배경이 과연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하도록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배경이 언제나 소설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의미를 가질 때에는 소설이 지향하는 그 무엇에 기여하거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에서의 장마는 하나의 소설 장치이면서 소설의 분위기를 주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옥남매의 폐가와 장마비는 소설의 주제를 암시하는 은유적인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라는 소설 배경은 우리 소설에서 죽음이나 불행의 이미지와 밀착되어 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아침부터 내리는 비의 축축함이 김첨지 아내의 죽음을 복선으로 하여 작품 분위기를 어둡게 한다. 윤흥길의 󰡔장마󰡕에서는 권오문과 김순철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김정한의 󰡔모래톱이야기󰡕에서도 장마와 홍수는 죽음의 이미지로 부각된다. 조마이 섬을 지키는 원주민들과 건우삼촌의 익사, 갈밭 싸움에서 물로 휩쓸려간 괴청년들의 죽음이 비를 동반한다. 김유정의 󰡔소낙비󰡕에서도 춘호처는 비오는 틈에 이주사에게 정조를 판다.

 

비오는 날의 배경적 의미

     󰡔비오는 날󰡕의 배경 설정은 비에 젖은 군상들에 대한 조건으로 자리 매겨져 있다. 원구의 뇌리에 박혀 있는 동욱 남매에 대한 기억과 회한은 비의 의해 언제나 기억되는 우울한 심상인 것이다. - 비오는 날이면 元求의 마음은 감당 할 수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東旭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에게는 으레 東旭과 그의 여동생 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가는 목조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의 오뉘 생각을 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東旭東玉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작중에서

    비는 통상 물의 이미지 중에서도 하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비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품 모두에서 비의 심상과 동욱과 동옥의 이미지는 상동성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 남매는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란 하강하는 즉, 몰락하는 인생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원구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가 잡화 행상을 하지 않는 비오는 날이기에 그들은 언제나 화자인 원구는 그들과 비를 동일시하게 되어있다.

    피난지에서 비오는 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답은 자명하다. 이 소설에서 주된 배경인 비오는 날은 소위 장사할 수 없는 날, 상인에게는 거칠게 말해서 공치는 날이다. 그것은 피난 생활의 궁핍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비오는 날인 장사할 수 없는 날마다 만나게 되는 동욱과 동옥은 원구에게는 동정적이면서 경제적 한계와 관련된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원구에게 이중적인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동욱은 국민병 수첩을 분실하여 강제 입대하였고, 동옥은 이만환이나 되는 거금을 잃어버리고 정처 없이 불구의 몸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목조건물의 새 주인은 그녀가 원구에게 주고 간 쪽지를 잃어버림으로써 동옥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잃어버림은 장마라는 배경에서 일어난다. 원구는 삼임칭 관찰자의 초점화자인 이른바 주인공이다. 작중의 주체인물은 모든 사건과 인물을 독자에게 일러주게 되는 주연인 동시에 카메라 렌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관심을 갖고 보여주어야 하는 동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피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장사를 하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조건이 비가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그는 장사를 하지 않고 자신보다 어려운 동옥을 위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이중성을 띄고 있다. 비오는 소리가 매력적이라든가 전시 피난처에서 불구인 여자를 수발하는 여유는 사실 불가능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로서의 동정과 생활인으로서의 혐실은 원구를 우유부단하게 만들었으며 그 핵심에는 비오는 날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그러한 인물 성격을 효과적으로 유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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