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 염상섭 – 욕망으로 말미암은 파탄과 가족의 몰락

<이심> 염상섭 – 욕망으로 말미암은 파탄과 가족의 몰락

 

<이심>의 새로운 면모 깊게 읽기

    1928년 10월 22일부터 1929년 4월 2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심󰡕은 기존 연구에서 통속소설로 폄하되어온 감이 없지 않으나 실제 이 작품은 소설사적 의미와 발표연대적으로 보아 󰡔사랑과 죄󰡕와 󰡔삼대󰡕의 맥을 잇는 염상섭의 주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작중 여주공인 춘경의 희생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숨어 있는 그녀의 욕망과 시대적 강압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망 그리고 작가의 인물형상화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이 작품은 다시 평가되어야 할 정도의 의미 있는 장편소설이다. 1920년대 우리 장편소설 자산의 재인식과 염상섭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1920년대 초반의 두 단편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염상섭의 󰡔제야󰡕에서 보이는 두 여인의 죽음은 일견 결혼한 여인의 순결문제와 결부된 죽음이라는 소재로서는 유사성을 지닌다. 그리고 일제의 핍박과 여성의 욕망이 맞물린 이심의 박춘경은 일제 통치하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일제감정기하에서 여성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이라는 식민지의 핍진한 삶이 드러나는 측면에서 가문의 몰락은 곧 조선인의 몰락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에서 드러나는 여인의 비극성

     <이심>의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춘경의 일생이 확연히 드러난다. 과거에 군수를 지낸 집안의 막내딸 춘경은 여학교시절 테니스 선수였다. 정구코치로 있던 창호의 낙서가 화근이 되어 연애사건으로 비화되면서 둘은 퇴학당한다. 결국 집에서 쫓겨난 춘경은 창호와 동거하게 되나 사회주의자로 몰린 창호가 투옥되어 생계를 잇기 위해 춘경은 일본인(佐野)가 운영하는 호텔에 취직하여 남편이 옥바라지를 한다. 춘경은 좌야의 유혹에 넘어가 매음까지 하게되어 파탄하고 아이까지 잃게 된다. 좌야는 미국인 커닝햄에게 춘경을 팔아넘기고 중국으로 도망가고 창호는 춘경에 대한 복수로 다시 춘경을 만나 유곽에 넘긴다. 강제로 유곽에 감금된 춘경은 자살한다.

     박춘경은 친일파로 추측되는 군수의 딸이었고 잘나가던 집안의 자제였다. 그러나 이창호와 결혼하면서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다. 이창호 역시 여고의 정구코치가 될 정도로 체육교사로서의 인텔리 계층이다. 과거 사회주의자였던 그가 경찰 심문과정에서 일본인 경찰에게 잉크병을 던져서 투옥된 뒤로 춘경이 가계를 책임지고 결국 유곽을 전전하다가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가문의 몰락과 필연적으로 핍박받는 시대상황

    이심의 주인공 춘경의 욕망의 중개자로서 주변부 인물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저 비교적 개화된 오빠 춘서와 사랑의 대상으로 실제 결혼한 남편 이창호가 있다. 한편 부정적 섹스 욕망의 중개자로는 좌야와 강찬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욕망의 중개자는 바로 춘경이 꿈꾸는 당대의 여성상인 금전욕과 성욕을 만족하고 사는 개회되고 사치하고 돈과 능력있는 여성상이었다. 춘경은 결국 주위 인물과 그녀의 여망의 제물이 되어 파탄된다.

     춘경은 대가문은 아니지만 재산도 있고 어느 정도 명망있는 가문출신으로서 신여성으로 자라났고 창호는 이참판의 아들로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들은 가문의식이 중요한 보수적 집단인 전근대적 유교 윤리 사회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다. 춘경과 창호는 당시 금기시되어온 소위 자유연애을 추구하다 가문과 학교에 의해 축출되지만 당시로서는 진보적 가치인 사랑을 능동적으로 쟁취한다. 그러나 창호는 소위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춘경은 식민지 사회에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게 된다.  춘경은 생계를 위해 정조를 파는 또 다른 욕망의 벽에 부딪친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의 분출구는 퇴로 없는 방향으로 계속 좌야와 강찬규와 커닝햄에 이르기까지 운명적인 파탄의 길로 욕망이 분출되는 것이다.

    테니스 코치인 창호에 대한 욕망의 표현 낙서를 통한 분출, 사랑의 쟁취, 퇴학 후 이창호와 동거, 좌야에 대한 돈과 성의 욕망 분출을 한몸으로 받아내는 캐릭터인 춘경은 소설 세계의 전체 축인 것이다. 자신의 성적 욕망과 일제하의 엄혹한 현실이 그녀를 이중적으로 압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 캐릭터의 타락상과 욕망을 일제강점기라는 당대 사회와의 관계에 연결시켜 작품 전반에 과감하게 등장시킨 염상섭의 이심은 1920년대의 대표적인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