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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왕의 집념과 사랑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4. 3. 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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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왕의 집념과 사랑

 

     안장왕은 고구려 제22(재위:519~531) 왕으로서 이름은 흥안(興安)이다. 문자왕의 장자로 태어나 498(문자왕 7)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문자왕의 사후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중국 양()나라로부터 영동장군 도독 영평이주제군사 고구려왕(寧東將軍都督營平二州諸軍事高句麗王)’에 봉해졌고, 북위(北魏)로부터도 안동장군 영호 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安東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에 봉해졌다. 이와같이, 중국의 남북조 양쪽에서 지위를 인정받는 한편, 양측과 조공무역관계를 유지하여 전대에 이미 확립된 대중국 양면외교정책을 따라 행하였다. 이러한 양면외교정책은 남북조의 분열을 이용하여 대중국방면의 안정을 추구하던 고구려의 전통적 외교정책이었던 것이다. 523년과 529년에는 백제를 침략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남진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갔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백제와의 전쟁 와중에 왕이 태자 시절 사랑한 백제의 한씨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왕은 그녀를 얻게된다.

 

춘향전의 모티브가 된 안장왕의 사랑

     조선상고사에 인용된 해상잡록(海上雜錄)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인물인 을밀은 안장왕 재위시에 장군이며 도르 닥는 선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장왕의 태자 시절 백제 국경마을인 개백현에 잠입하여 마을 둘러보다가 밴제군에 쫒기에 되었고 그 비장의 유지인 한씨집에 숨어 들었다 그곳에서 안장왕은 미모가 뛰어나 한주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미래를 언약하였다. 고구려로 돌아간 그는 왕위를 물려받고 여러번 한주라는 여인을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만 백제군의 저항에 막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안장왕이 한주가 갇혀 있음을 몰래 탐지하여 여러 장수를 불러 백제 땅 개백현(皆伯縣)을 점령하고 한주를 구하는 자에게 천금과 만호후(萬戶候)의 상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응하는 자가 없었다. 그 당시 왕의 여동생 안학(安鶴)공주가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녀와 을밀(乙密)이 서로 사랑했지만 을밀의 가문이 한미하여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을밀이 왕의 소원을 알고 출정하여 승리하면 공주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했다. 허락을 얻은 을밀이 수군(水軍) 5천을 거느리고 백제로 진격했다. 잭제에서는 비밀히 결사대 20명을 뽑아 평복에 무기를 감추어가지고 앞서서 개백현으로 들여보냈다. 태수는 자기 생일에 크게 잔치를 열고 옥히 가둔 한주가 자신의 여인이 되지 않는다면 죽이려고 했고 그녀가 태수를 마다하자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빨리 처형하기를 명하였다. 이때 을밀의 자객들이 잔치에 들이 닥쳐 고구려의 군사 10만이 입성하였다고 외치니 성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을밀이 군사를 몰아 성을 넘어 들어가서 감옥을 부수어 한주를 구해내고 안장왕이 오기를 기다렸다. 안장왕이 결국 한주를 만나고 왕은 안학공주를 을밀장군에게 시집보냈다. 이 이야기는 춘향전과 그 스토리의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왕권 약화기의 로맨스

     안장왕은 문자왕의 장남이고 한강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 피살되었다. 그리고 그의 후사가 없어서 안원왕이 형인 안장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안원왕 역시 피살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형인 안장왕이 시해를 당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근거로 고구려 내부의 혼란이 가속되어 폭발한 것으로 보기도 하며 혹자는 안원왕이 형 안장왕을 시해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기록의 부재로 근거는 빈약하다. 당시에는 선대와 달리 점점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고구려 내부 귀족들의 불만이 점점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는 이때부터 사실 쇠락이 본격화되는데 왕과 국상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양원왕 이후로는 군주를 견제하는 막리지가 실권을 잡고 상대적으로 왕권이 매우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안장왕과 한주와의 러브스토리는 비극적으로 끝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장왕이 21세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후로 자주 백제를 쳤지만 항상 패배했다. 그리고 한주가 결국 안장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왕이 후사 없이 피살되었다는 기록만 있다. 안장왕과 한주라는 여인의 이야기는 춘향전의 이야기처럼 애틋하지만 왕의 죽음과 두 사람의 로맨스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격동기의 비극적 사랑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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