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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 범공 스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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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톰 2024. 4. 1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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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 범공 스님 이야기

 

범공은 김덕지인가

     범공이라는 불교 승려는 원래 통일신라의 제56대 경순왕의 막내아들로 신라 말기의 왕족이자 고려 초기의 승려이다. 출가 이전 왕족 시기의 이름은 사서에 확실하게 전하지 않지만 불교계의 기록에 의하면 화엄종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이름을 범공이라 했는데, 그 뒤로 법수사와 해인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범공이 등장하지 않으며, 첫 기록은 고려 말기인 1281년에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935년 음력 11월 신라가 고려에게 항복한 뒤, 형인 마의태자는 경순왕에게 하직한 후 바로 개골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의 막내아들은 머리를 깎고 화엄종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했는데, 본명이 김덕지라고 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나 이후의 자세한 행적은 불분명하다.

 

후세의 기록들에 나타난 범공

    경순왕의 가계도를 보면 전비인 죽방부인(竹房夫人)에게서 마의태자(麻衣太子), 범공(梵空)둘째왕자 그리고 장녀 덕주공주가 있다. 그리고 별빈인 순흥 안씨(順興 安氏)에게서 별자인 김덕지(金德摯)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대개 범공이 김덕지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의 막내아들 김덕지 (金德摯) 가 중이 되어 법수사와  해인사에 드나들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해인사지라는 기록에 범공에 대한 언급으로 그의 실명인 김덕지가 나타난다. 여기서 처음 김덕지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불교 승려인 김덕지는 울산 김씨의 시조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증보문헌비고라느 기록에는 경순왕의 계자 범공이 해인사에 들어가기 전에 김운발(金雲發)이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분적하여 나주 김씨 시조가 되었고, 경순왕의 별자(別子) 김덕지가 분적하여 울산 김씨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울산 김씨 족보에서는 시조 김덕지를 범공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김씨 족보에서는 김은열 묘지명을 인용하면서 범공을 경순왕의 차자(次子) 김굉(金鍠) 또는 김황(金湟)과 동일시하고 김덕지를 별빈(別嬪) 소생의 별자(別子)로 보기도 한다.

 

소설적 구상으로 추측한 김덕지

    범공, 즉 김덕지는 형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가 망할 때 마지막까지 충절을 지킨 인물로 꼽힌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마지막까지 절조를 지킨 범공의 행동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적 대의 명분론에 비추어 재조명되고 칭찬받았다. 그리고 울산광역시의 남암산에 위치한 김신대(金信臺) 설화에 의하면 승려가 된 범공이 말년에 세운 김신암(金信庵)이라는 절에서 유래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동고사에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 덕지 왕자가 범공이란 스님이 되어 도를 닦으며 부왕과 어머니, 마의태자 등 5인의 상을 목각으로 조성하여 이 절에 봉안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김부대왕절', '진불대왕절'이라 불렀다.

     위의 근거를 토대로 투론하면 김덕지는 처자를 버리고 마의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불가 화엄종에 귀의한다. 마의태자는  마로 된 옷을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불렀다. 경순왕이 신라를 고려에 바치는 군신회의 마의태자는 동생 덕지(德摯) 왕자 및 이순유(李純由) 등과 함께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결국은 경순왕의 뜻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경순왕이 경순왕이 개경으로 옮겨가자 그는 동생 김덕지(金德摯) 왕자와 함께 개골산에 들어가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때 그의 남동생도 처자(妻子)를 버리고 마의태자와 함께 개골산에 들어갔다가 이후 화엄종에 귀의(歸依)하여 승려가 되어 법수사와 해인사에 거처하였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전설에 의하면 마의태자는 동생 김덕지(金德摯) 또는 덕주공주와 함께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머물다가 혼자 개골산으로 갔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는 김덕지가 덕주공주로 변형되어 있다. 결국 김덕지는 처음에 마의태자와 동행했다가 불가에 귀의했는데 이전에 처자가 있었다. 그리고 울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지만 만년에는 스님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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