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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연개소문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4. 4. 1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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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연개소문

 

가문과 출신에 대한 소개

     고구려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은 누구일까? 그것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연개소문이 아닐까 한다. 자세한 생몰 역시 약간의 이견들이 있다. 성씨도 천씨나 연씨로 아직도 설왕설해중이다. 연개소문의 출생연도에 관한 설은 590년설, 594년설, 595년설, 601년설, 603년설, 614년설까지 다양하다. 사망한 해도 664, 665, 666년등으로 논의가 있다. 그의 증조부(曾祖父)는 자유(子遊)이며 조부(祖父)는 태조(太祚)로서 다 막리지(莫離支)를 역임하였고, () 개금(蓋金)은 태대대로(太大對盧)였었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쇠를 잘 부리고 활을 잘 쏘아 군권(軍權)을 아울러 쥐고 모두 나라의 권세를 잡고 있었다.

     《삼국사기구당서, 신당서의 기록에는 고구려의 동부대인이었던 연태조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나온다. 서부와 동부 중 정확히 어느 쪽 출신인지는 관련 기록이 없어서 알기 힘들지만 동부대인이었다는 기록이 더 많기 때문에 동부 출신이 맞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이를 근거로 연개소문의 가문을 동부여 계열 귀족으로 추론하기도 한다. 주몽의 장인이자 소서노의 부친인 연타발이 동부여의 사람이어서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고구려 장군으로서의 활약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부대인의 직위를 계승한 연개소문은 6421월 영류왕으로부터 천리장성의 축조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아 고구려 북부의 국경지대로 파견나가게 되었다. 이는 6세기 이래 고구려의 귀족 연립 체제를 위협해오는 연씨 가문의 힘과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영류왕과 관료들이 의도적으로 연개소문을 북쪽으로 내보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연개소문은 동부대인이 된 이후 구당서에는 연개소문이 관직을 거머쥐고 왕권을 범하려 했다고도 적혀 있다. 이는 당시 고구려 내에서 강성한 세력으로 올라선 연씨 가문, 영류왕, 귀족들 간의 정치 투쟁화 되었다. 이에 영류왕까지 포함된 연개소문 제거 계획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암살 모의도 이미 조정 깊숙히 세력을 심어두었던 연개소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하는 가운데 연개소문은 대담하게도 역습을 꾀한다.

 

 

연개소문이 왕을 시해하였다.

     64210, 영류왕과 대신들이 한통속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연개소문은 성 남쪽에 여러 부의 군사들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는 술과 음식을 성대히 차린 후에 대신들을 불러들여 함께 군대 사열식에 참여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이에 참석하기로 했던 대신들은 사열식 도중 들어닥친 연개소문 밑의 동부 군사들에 의해 무참히 목숨을 잃었는데, 이때 살해당한 인원들이 임금과 대신들을 포함하여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신당서에서는 연개소문이 자신의 군사들을 숨겨두었다가 대신들이 도착하는 족족 하나씩 죽여버렸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왕과 대신들은 며칠 후 연개소문을 죽이기로 논의를 하였는데 왜 고위 대신들이 연개소문이 군사를 이끌고 사열하는 행사에 참석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연개소문을 죽이기로 이미 계획까지 짜놓은 상태에서 연개소문의 군사들 속으로 들어가게된 이유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아마도 연개소문이 자신은 정계 은퇴선언을 했다거나 아니면 다시금 동부대인의 지위를 내놓는 이임식 행사나, 혹은 천리장성 축조 감독을 위해 변방으로 떠나기 전에 송별식일 수도 있겠다.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

    정변을 일으켜 반대파 대신들을 없애버린 연개소문은 곧바로 궁궐로 쳐들어갔다. 다른 군사들이 저지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궁성을 장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구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궁궐을 향해 달려가면서 일부러 창고에 불을 질렀다고 나와 있다. 이는 수도 경비병들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경비병들이 불을 끄기 위해 창고로 달려가는 동안 연개소문 휘하 병력들은 큰 저항없이 왕이 거처하는 궁전에 다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위해 아주 치밀하고 정교한 계략을 짜놓았고, 이를 신속히 행동으로 옮겼다. 궁궐에 군사를 이끌고 난입한 연개소문은 마침내 영류왕을 찾아내고는 그를 시해해버렸다.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아우인 고태양(太陽)의 아들 고보장을 불러와 그를 임금 자리에 앉혔으니 그가 바로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인 보장왕이었다. 이후 연개소문은 스스로 막리지(莫離支)라는 직책에 올랐는데 당나라의 병부상서 겸 중서령에 비견되며, 나라의 군사력과 궁중의 행정에 관여하는 직책이었다. 연개소문은 권위적인 성격을 보였는데 자신의 관복을 온통 금으로 장식했으며, 평소에도 칼을 다섯 자루나 차고 다녔고, 말을 타고 내릴 때는 장수를 발받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가 장군의 모습으로 전쟁에 임할 때 다섯자루의 칼이 번득이면 적진에서 상당량 기가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연개소문은 당군과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말갈과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의 33개 성을 뺏기도 했고 당과의 수많은 전투애서 모두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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