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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는 환경이 만들어낸 악인인가.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6. 8. 3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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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는 환경이 만들어낸 악인인가.

 

『디미트리오스의 관』과 맹자의 「거이기 양이체」

소설의 주인공, 디미트리오스는 악하게 태어난 것인가, 악한 세계가 그를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에릭 앰블러의 『디미트리오스의 관(The Mask of Dimitrios)』은 선과 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이스탄불에서 발견된 국제범죄자 디미트리오스의 시체를 계기로 추리소설가 찰스 래티머가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래티머의 조사는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스미르나, 소피아, 제네바, 파리 등 유럽 여러 지역을 거쳐간다. 그 과정에서 디미트리오스가 밀수, 마약거래, 암살, 첩보, 인신매매 그리고 공갈 등에 관여했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 작품을 단순히 “악명 높은 범죄자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로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작가 앰블러가 진정으로 추적하는 것은 디미트리오스라는 한 인간의 악이 아니라, 한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환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맹자의 거이기 양이체(居移氣 養移體)를 연결해볼 수 있다.

 

<거이기 양이체>의 의미

맹자의 표현 “거이기 양이체(居移氣 養移體)”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 거주하고 어떤 것을 기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기질과 몸가짐, 행동의 모습까지 변화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그가 살아가는 공간, 그가 만나는 사람, 그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가치, 그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그 사회가 보상하는 행동 등이 인간의 성격과 행동양식에 영향을 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디미트리오스의 관』에 적용하면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디미트리오스는 원래 악한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악인이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환경이 디미트리오스의 악을 만들어낸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그의 악을 전적으로 환경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을 것이다.

 

디미트리오스의 환경은 어떠한가

디미트리오스의 출발은 거창한 정치적 악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국제적인 범죄조직의 수장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앰블러가 보여주는 디미트리오스의 초기 모습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하층민에 가깝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정직하게 일해서 성공하는 것보다, 속이는 능력과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권력자와 연결되는 능력이 훨씬 강력한 생존 수단이 되었다. 디미트리오스에게 적어도 범죄는 처음부터 하나의 철학이 아니었고 오히려 생존기술에 가까웠다. 디미트리오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스미르나 사건이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돈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범죄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존을 확보한다. 그는 자신의 범죄 때문에 처벌받는 대신 오히려 살아남는다. 즉 디미트리오스는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법칙을 학습하게 된다. “착하게 사는 것보다 남을 속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이기(居移氣)”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환경이 인간에게 특정한 행동양식을 반복해서 학습시킨 것이다. 그리고 스미르나의 화재와 혼란은 디미트리오스에게 ‘혼돈의 기회’를 가르친다. 디미트리오스는 바로 이러한 혼란을 이용하여 살아남는다. 그의 범죄 경력은 이후 정치적 암살, 밀수, 마약거래, 첩보 등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후 그는 범죄에서 성공할 때마다 한 단계 더 큰 범죄로 성장한다. 처음에는 절도와 살인, 그 다음에는 밀수, 그 다음에는 마약, 그 다음에는 정치적 암살, 그 다음에는 첩보, 그리고 국가기밀 거래까지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범죄의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그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죄가 커지면 더욱 성공한다는 세상의 환경이 희한하다. 이것이 『디미트리오스의 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한 날카로운 사회비판일 것이다.

 

 

범죄자의 사회적 상승과 국제적 성공

디미트리오스는 단순한 거리의 범죄자가 아니다. 그는 결국 국제 금융과 정치의 세계에 접근한다. 특히 유라시아 크레디트 트러스트(Eurasian Credit Trust)와 관련된 금융, 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그의 범죄가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국제적인 경제·정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맹자의 논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거이기라는 측면에서 가령, 환경이 사람의 기질을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디미트리오스의 경우에는 소위체의 측면에서도 그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욕망을 키우고 행동하면서 인간의 몸가짐과 생활양식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가난한 청년이 아니고 돈과 권력과 정보 그리고 여성을 거래하는 파워풀한 인간이 된 것이다. 디미트리오스는 말하자면 사회적 상승과 국제적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범죄를 단순히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다. 후반부의 디미트리오스는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를 넘어 환경을 조종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그의 악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이다. 초기의 디미트리오스는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에서 후기의 디미트리오스는 환경을 이용하는 인간이 되고, 다음 단계에서 환경 자체를 범죄의 도구로 만드는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국제적 범죄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인 것이다. 입니다.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은 단순히 신분 위장을 뜻하지 않는다.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 혹자는 가면을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맞추어 만들어내는 사회적 얼굴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맹자의 “거이기”와 디미트리오스의 삶의 변화가 놀랍게 들어맞는다. 사람이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면 디미트리오스에게는 수많은 얼굴이 생길 수 있다. 가령 스미르나의 디미트리오스는 단순한 생존자의 모습이라면 밀수업자 디미트리오스는 돈을 벌기위한 거래자이고 암살자 디미트리오스는 살인 전문가의 살인청부업자의 모습이며, 첩보원 디미트리오스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보를 거래자하는 거물 인물이고 파리의 디미트리오스는 뱅커, 즉 금융가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인물이 여러 환경을 통과하면서 그 환경에 적합한 인간으로 변신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디미트리오스에게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격을 만들어내는 거이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디미트리오스의 관』에서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으면 독자는 놀라운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디미트리오스만 악인인가? 그렇다면 그에게 돈을 주고 암살을 의뢰한 사람들은? 그에게 군사기밀을 팔거나 사들인 국가와 정치세력은? 마약 거래에서 이익을 얻는 금융 네트워크는? 전쟁과 민족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여성 인신매매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이 질문을 따라가면 디미트리오스 한 사람만의 악으로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그들 모두가 악인이기 때문이다. 디미트리오스가 악해서 세상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가 디미트리오스 같은 인간을 성공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디미트리오스의 최후

마지막에 래티머와 피터스는 디미트리오스를 찾아낸다. 피터스는 과거 자신을 배신했던 디미트리오스에게 복수하고 동시에 거액을 뜯어내려 한다. 그러나 디미트리오스는 오히려 피터스를 총으로 쏜다. 래티머와 디미트리오스가 몸싸움을 벌이고,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의 권총을 빼앗는다. 래티머가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총성이 들린다. 돌아와 보니 디미트리오스는 죽어 있고 피터스 역시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디미트리오스가 결국 자신이 만들어온 폭력의 세계에서 폭력으로 최후를 맞는 장면이다. 디미트리오스는 평생 사람을 이용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이용했던 세계의 논리에 의해 죽는다. 그가 믿었던 논리는 바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용한다.”였다. 마지막 순간 그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일종의 역전 상황이다. 강자였던 그가 만든 세계가 결국 약자가 된 그 자신을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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