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의 숨은 갈등에 대한 추리

사회주의자들의 갈등과 추리소설적 관점
염상섭의 『삼대』는 흔히 조씨 조부손이라는 ‘삼대’를 통하여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의 갈등을 그린 가족사소설로 평가된다. 그러나 작품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김병화, 피혁, 장훈, 홍경애, 필순 그리고 필순의 아버지 또 원삼 등의 인물군을 살펴보면 다른 서사가 나타난다. 이들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억압적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을 꿈꾸며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비밀자금, 연락책, 잠복, 위장, 추적, 테러, 체포, 자살이라는 사건의 연쇄를 만든다. 따라서 『삼대』의 사회주의자 부분은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정치적 미스터리 서사로 읽을 수 있다.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피혁이 가지고 온 자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김병화를 습격한 사람들은 적인가 동지인가, 장훈은 왜 김병화를 공격했는가, 그리고 장훈이 필순 부친을 테러하여 숨지게 하고 왜 자신은 자살했는가, 경찰은 어떻게 조직의 실체에 접근하는가, 그리고 누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독자를 추리소설적 관점에서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김병화와 사회주의적 인물들
이 인물들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비밀 네트워크처럼 구성되어 있다. 김병화는 사회주의 운동에 몸을 담은 젊은 지식인으로, 부유한 조덕기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한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사상적으로 충돌하고 집을 나와 가난한 하숙생활을 한다. 조덕기가 경제적으로 ‘가진 자’의 세계를 대표한다면 김병화는 그 세계를 비판하는 ‘못 가진 자’의 세계를 대표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사람이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친구라는 점이다. 바로 이 관계가 『삼대』의 정치적 긴장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만들지 않는다. 피혁은 이 네트워크에서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해외의 사회주의 운동과 국내 운동을 연결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운동자금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김병화와 접촉한다. 피혁이 홍경애의 집을 은신처처럼 이용하고, 이후 국외로 빠져나가는 과정은 첩보소설의 ‘잠복 인물’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말하자면 피혁은 해외와 국내 운동세력을 연결하는 인물인 것이다. 장훈은 또 다른 비밀 조직의 핵심 인물이다. 중요한 것은 장훈이 김병화와 같은 방향의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도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삼대』의 사회주의자들은 하나의 단결된 혁명집단이 아니다. 그 내부에도 경쟁과 의심과 주도권 다툼이 존재한다. 필순은 이러한 남성 중심의 정치적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인물인 동시에 그 세계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난한 노동계층의 여성으로 김병화와 가까운 관계에 놓이고, 결국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린다. 원삼 역시 이 저항의 주변부에 연결되는 인물로서, 『삼대』의 사회주의 네트워크가 특정한 몇 명의 혁명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침투해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인물군은 하나의 ‘인물네ㅋ트워크가 가 된다. 피혁 → 운동자금 → 김병화 → 경애, 필순 → 장훈 계열 → 경찰의 추적이라는 연결망이 바로 『삼대』의 추리소설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기본 구조다.

피혁은 사건을 발생의 주요 인물
피혁은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연결자이며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피혁이 남긴 운동자금은 김병화에게 전달되고, 병화는 그 돈을 이용하여 경애와 함께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경찰의 감시를 피하려 한다. 이 가게에는 조서총독부 바로 옆의 산해진이라는 반찬가게로서 고성능 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여차하면 조선총독부를 고성능 폭탄으로 폭파해버리겠다는 숨은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그 어떤 작가가 조선총독부를 고성능 폭탄으로 폭파하겠다는 의도를 소설로 쓸 수 있었겠는가. 이 지점에서 염상섭의 위대한 면모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게가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의 의심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점은 오히려 추리소설적으로 더욱 흥미롭다. 전형적인 추리소설에서는 ‘시체’가 사건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나 『삼대』에서는 사라진 사람과 이동한 돈, 감춰진 조직, 불분명한 의도가 시체를 대신한다. 피혁은 이미 국외로 빠져나갔지만 그의 흔적은 운동자금이라는 형태로 국내에 남는다. 그 돈은 병화에게 넘어가고, 병화의 행동은 장훈 계열의 의심을 낳으며, 결국 경찰의 수사망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현대 첩보소설의 구조와도 매우 흡사하다. 그런 측면에서 『삼대』에서 특이한 부분은 김병화가 장훈 계열로부터 습격을 당하는 장면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병화는 사회주의자들에게 공격받은 피해자다. 그러므로 독자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한다. 김병화는 사회주의 조직 내부의 배신자로 몰린 것인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하다. 김병화를 공격한 장훈 쪽의 행동에는 단순한 적대가 아니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계산이 포함되어 있다. 즉 병화와의 관계를 일부러 악화시켜 경찰의 의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위장 공격의 성격이 개입되어 있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중요한 트릭인 ‘사건의 외관과 실제 목적의 불일치’에 해당한다. 추리소설에서 독자는 사건의 표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격은 보호일 수 있고, 의심은 위장일 수 있으며, 적대는 조직을 지키기 위한 연극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삼대』는 사회소설을 넘어 추리소설적인 독법을 가능하게 한다.
4. 사회주의자 내부의 갈등추리
피혁과 김병화, 장훈 사이의 갈등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독자가 쉽게 어느 한쪽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피혁은 해외 운동세력과 국내 운동세력을 연결하지만, 그의 정확한 활동 내용은 완전히 공개되지 않는다. 김병화는 해외세력인 피혁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만 자신 역시 다른 조직의 의심을 받는다. 국내세력인 장훈은 병화를 공격하지만 그 행동의 실제 목적 역시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자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누가 진짜 동지인가? 누가 경찰에게 정보를 흘렸는가? 누가 조직을 보호하고 있는가? 누가 조직을 이용하고 있는가?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용의자 구조’와 동일하다. 더욱이 식민지 상황에서는 경찰뿐만 아니라 동지들끼리도 서로를 감시한다. 따라서 사건은 ‘혁명가 대 경찰’이라는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혁명가 대 혁명가, 조직 대 조직, 개인 대 조직이라는 다층적인 심리 게임으로 확대된다.
5. 장훈 자살의 의미는?
추리소설에서 범인의 자백은 사건을 해결하는 장치다. 그런데 『삼대』에서 장훈은 경찰의 수사가 깊어지자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탐정소설의 결말과 정반대다. 보통 추리소설에서는 수사 → 증거 발견 → 범인 특정 → 자백 → 사건 해결이라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삼대』에서는 수사 → 조직의 비밀 접근 → 핵심 인물의 자살 → 증거 단절 → 진실의 불완전한 회수 라는 과정이 나타난다. 장훈의 자살은 진실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봉쇄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조직의 비밀을 가져가 버린다. 그래서 독자는 사건의 모든 진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이러한 ‘진실의 불완전한 공개’는 현대적인 미스터리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기법이다.
조덕기의 탐정역할
추리소설적 관점에서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오히려 사회주의자가 아닌 조덕기다. 덕기는 사건의 중심에 직접 뛰어드는 탐정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세계를 동시에 알고 있다. 조의관의 가족 내부 사정을 알고 있다. 상훈과 경애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는 김병화와 친구이고 필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김병화의 활동과 관련된다. 집안에서는 조부인 조의관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일본어 통역을 한 까닭에 경찰의 조사에도 휘말린다. 따라서 덕기는 작품의 여러 사건을 연결하는 관찰자이자 중개자의 위치에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덕기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하지만 동시에 사건의 일부만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독자는 덕기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따라가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
『삼대』의 소위 항일운동가로 추측되는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항일전선의 투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믿지 못한다. 피혁과 김병화 그리고 장훈은 모두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계열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한팀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념의 차이, 조직의 차이때문에 상호 불신이 존재한다. 따라서 『삼대』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영웅적인 혁명 서사가 아닌, 오히려 그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약점과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복잡성은 추리소설의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이 분명할 때가 아니라 친구와 적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다. 『삼대』의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그렇다. 피혁은 소련에서 국내로 잠입한 독립운동가이고, 그의 등장은 작품 안에서 비밀과 혼돈 역할을 한다. 반면 장훈은 김병화 일행의 자금 출처가 피혁이라는 점을 알아낸 뒤, 김병화를 겁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 갈등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누가 항일 활동을 주도하고 누구에게 중요한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비밀 자금이 공개될 경우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를 두고 벌어진 권력 투쟁에 가깝다. 피혁과 장훈의 갈등은 독립운동 자금을 둘러싼 신뢰와 통제 문제에서 비롯되고 결국 장훈 일파가 김병화 일행을 습격하는 폭력적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이 갈등은 장훈의 연속된 테로로 말미암아 결국 필순의 아버지 사망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져, 개인 간의 충돌을 넘어 식민지 현실 속 사회운동 내부의 균열을 드러내고 본인도 자살하게 된다. 물론 일경의 수사가 좁혀오면서 비밀을 유지해야하는 장훈의 자살 선택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당대의 서로를 불신하는 긴박한 상황이 너무나 도식적으로 그려진 게 아쉽다 하겠다.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읽기 (0) | 2026.08.28 |
|---|---|
|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100대 추리소설 (0) | 2026.08.20 |
| 추리소설의 베스트 트릭 10가지 (0) | 2026.08.16 |
| <삼대>의 조의관을 누가 죽였나? (0) | 2026.08.14 |
| 염상섭 장편소설은 추리소설인가 (0) | 2026.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