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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읽기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6. 8. 28.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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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읽기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미스터리 세계를 통과하는 탐정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읽으면,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거대한 미스터리 세계를 통과하는 용감한 탐정이자, 동시에 자신이 벌인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는 심리적 탐정으로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의 귀향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무엇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가?”, “이 상황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하드보일드 계열의 모험적인 탐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렇게 보면 『오디세이아』는 현대적인 의미의 범죄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자신이 발견한 단서를 바탕으로 가설과 검증을 하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그것이 오류로 판단되면 다시금 새로운 가설을 다시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결국 진실의 발견이라는 추리적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 전투의 영웅이 아니라 추론의 영웅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대체로 육체적 괴력과 초인적인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테세우스 그리고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등은 엄청난 파워의 소유자들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열두가지 과업을 완수한 괴력의 상징이고,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최강 전사로 묘사되며, 테세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신체 능력과 용기로 미노타우로스 모험을 떠난 영웅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무기는 칼이나 창보다 두뇌이다. 그리스어로 오디세우스의 특성을 표현할 때 중요한 개념이 메티스(mētis)이다. 그는 상황을 읽고,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속임수를 간파하거나 역으로 속임수를 사용하는 실천적 지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추리소설의 탐정에게 필요한 능력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탐정은 사건을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거짓을 제거하고,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며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을 세운다. 오디세우스도 똑같은 일을 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탐정형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추리 사건인가?

오디세우스의 가장 유명한 전략 가운데 하나가 바로 트로이 목마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무력보다 적의 심리를 역추론했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인들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철수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 추리적 사고가 출발한다. 트로이인들이 목마를 발견했을 때 중요한 것은 목마 자체가 아니라 그 목마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트로이 목마는 단순한 군사작전이라기보다 심리적 추리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적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적의 사고방식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추리구조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를 하나의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구조가 나타난다. 추리한 상황을 스토리의 단계별로 나열하면 그때마다 추론할 난제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먼저 키코네스전투와 약탈에 있어서 오디세우스는 왜 계속 위험에 빠지는가 하는 문제를 추론하게 된다. 그리고 로토파고이의 망각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왜 귀향을 포기하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된다. 그리고 폴리페모스의 식인 거인과의 싸움에서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의 약점은 무엇인가를 추론하여 거인의 눈을 찌르고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올로스 바람의 봉인에서는 누가 사고를 일으켰는가를 따진다. 한편 라이스트뤼고네스 거인들의 습격부분에서는 안전한 공간은 과연 존재하는가를 추론한다. 또한 키르케 동료의 돼지 변신에서는 과연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추론한다. 세이렌의 유혹의 노래 부분에서는 인간은 욕망은 어떻게 통제하는가 하는 점을 추론한다. 그리고 스킬라 여섯 머리가 달린 괴물에서는 최악의 선택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따져본다. 그리고 칼립소의 영원한 안락챕터에서는 귀향이 정말 행복한 것인가를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이타카섬에 되돌아왔을 때 수 많은 구혼자들의 이타카국가의 점령 상황을 보고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를 추론한다. 이렇게 보면 『오디세이아』는 사실상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미스터리 사건들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 사건은 오디세우스의 탐정적 역할

소설의 전체를 통틀어 특히 오디세우스의 탐정적인 기질이 발휘된 부분이 바로 키클롭스 폴리페모스 거인과의 싸움 사건으로 이것은 추리소설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오디세우스는부하들과 함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지키는 동굴에 갇힌다. 그때 단순히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의 생각에 골몰하다가 적의 정보를 수집한다. 거인을 관찰한 결과 폴리페모스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전면전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다른 정보를 수집한 결과 폴리페모스는 혼자 살고 있으며 양을 기른다. 그리고 약점을 발견한다. 그는 술에 취하면 무력화될 수 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신분을 은폐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전을 실행한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공격하고 탈출한다. 눈을 찔린 폴리페모스가 다른 거인들에게 아무도 아닌 놈이 내눈을 찔렀다는 의미로 아무도 내눈을 찌르고 공격하지 않았다고 외치게 된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오디세우스의 치명적인 심리 결함이 드러나는데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 배를 타고 떠나면서 결국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이미 완벽히 탈출했다고 확신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과시한 것이다. 추리소설적으로 말하면 범인을 잡은 탐정이 마지막 순간 자신의 정체를 밝히다가 위험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저주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 결과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더욱 험난해진다. 따라서 『오디세이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단순히 “신들이 오디세우스를 괴롭혔다”고만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당수 사건에는 오디세우스 자신이 저지른 일들 고난의 원인이 되기 일쑤이다. 이것이 작품을 심리소설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아이올로스의 바람 주머니 사건은 심리추리이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에게 모든 바람을 가죽 주머니에 봉인해 준다. 이것은 귀향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단서이자 도구인 것이다. 그런데 동료들은 그것을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실과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부하들은 그것을 모른다. 부하들은 동료들은 그 주머니에는 틀림없이 보물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추론은 잘못된 가설이다. 추리소설에서는 잘못된 정보가 잘못된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건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데 『오디세이아』에서도 잘못된 추론이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재난발생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오디세우스는 호기심 많은 탐정인가

세이렌의 사건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심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부하들에게는 모두 귀를 막게하고 하고 정작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쾌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과연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탐정의 욕망과 유사하다. 탐정 역시 위험한 사건을 만나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이렌은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진실에 대한 위험한 호기심’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 선원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즉, 호기심은 통제할 수 없지만, 호기심을 통제할 장치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의지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묶게 한다. 그는 속으로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순간에는 판단력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는 미래의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현재의 자기 자신이 미래의 자기 자신을 통제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놓는다. 호기심과 모험을 즐기면서 안전장치를 준비하는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칼립소 사건은 귀향 즉 삶의 진짜 의미를 묻는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사실상 영원한 안락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그는 고통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타카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여기에서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고향이라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가 되찾고 싶은 것은 이타카의 왕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남편으로서의 정체성, 아버지로서의 정체성, 인간으로서의 과거의 자신이다. 따라서 오디세우스의 진짜 사건은 “어떻게 이타카에 도착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였으며, 이 모든 사건을 겪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그 초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타카에 도착한 순간부터 오디세우스는 탐정이 된다. 자신의 아내에게 구혼한 자들이 집을 점령하고 있었기에 오디세우스는 먼저 상황을 파악해야 만 했다. 누가 충성스러운가? 누가 배신했는가? 누가 자신을 알아보는가? 누가 적인가? 같은 문제들을 파악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폐쇄적 공간의 탐정소설과 비슷하다. 오디세우스는 귀환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변장한 탐정으로 집 안을 조사한다. 마침내 만난 아내 페넬로페 역시 오디세우스와 같은 ‘추리를 하며 시험을 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만 상대방의 정체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페넬로페 역시 오디세우스를 의심하고 시험하는 것이다. 특히 오디세우스만 알고 있는 비밀을 통해 진짜 오디세우스인지 검증한다.

 

 

 

나의 생각

오디세이아가 추리소설이라고 규정한다면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적 관점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 더할 나위 없는 흥미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디세우스가 위험에 빠지는 데에는 외부의 적만큼이나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작용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오디세우스는 괴물들을 물리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영웅적 자아와 싸우며 귀향하는 사람인 것이다. 통상 추리소설에서 탐정은 사건 바깥에 있지만 오디세우스는 사건 바깥에 있지 않고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해결사이기도 한 그것은 그의 양가적인 성격 때문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성격이 한몸에 존재하는 오디세우스는 긍정적인 영웅심리인 그 어떤 위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부정적인 심리인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 동료의 생명보다 자신의 영웅적 명예를 우선시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양가성은 어쩌면 인간의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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