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분석

탈출 계획이라는 여러 추리적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작 자체를 읽어보면 단순한 감옥 탈출 이야기를 넘어 범죄의 진실, 오판, 은폐, 심리적 추적 그리고 탈출 계획이라는 여러 추리적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1982년 발표된 이 작품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중편(novella)으로, 《Different Seasons》에 수록됐다. 스티븐 킹의 공식 사이트도 이 작품을 부당한 투옥과 독특한 탈출을 다룬 작품으로 소개한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의 스토리 속으로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는 독자들이 풀어야 할 세 개의 수수께끼가 놓여 있다. 첫째, 앤디 듀프레인은 정말 아내와 그녀의 연인을 죽였는가? 둘째, 그렇다면 앤디는 어떻게 자신에게 내려진 종신형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것인가? 셋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감옥이라는 완벽한 감시 공간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는가? 이 세 질문은 각각 범죄의 진상, 정의의 진면목, 탈출의 방법이라는 서로 다른 추리 문제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감옥을 거대한 밀실로 만들어 놓고 독자에게 사건의 진실과 탈출 방법을 추적하게 하는 미스터리이다. 소설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은행가 출신이다. 그는 어느 날 아내 린다와 그녀의 연인인 골프선수 글렌 퀸틴이 살해된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 앤디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쇼생크 주립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감옥의 죄수 엘리스 레드 레딩의 회고 형식으로 진행된다. 레드는 쇼생크에서 무엇이든 구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앤디에게 작은 물건을 구해주면서 친구가 된다. 앤디는 감옥에서도 다른 죄수들과 다르다. 그는 은행가답게 숫자와 금융에 능하고, 감옥의 교도관이나 간수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준다. 특히 간수 바이런 해들리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았을 때 앤디는 그 돈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방법을 알려준다. 그 대가로 앤디는 교도관들의 보호를 받게 되고, 결국 감옥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이때부터 앤디는 감옥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죄수이지만 죄수들 가운데 누구보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다. 레드는 처음에는 앤디의 무죄를 확신하지 않는다. 앤디가 지나치게 침착하고 지적인 데다 자신의 과거를 거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앤디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등장한다. 젊은 죄수 토미 윌리엄스가 쇼생크에 들어온다. 토미는 과거 다른 교도소에 있을 때 엘우드 블래치라는 범죄자와 함께 수감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블래치는 자신이 골프선수 글렌 퀸틴과 한 변호사의 아내를 살해했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토미의 이야기를 들은 앤디는 충격을 받는다. 블래치가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은 바로 그 살인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토미의 증언은 앤디가 억울하게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밝힐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런데 교도소장 새뮤얼 노턴은 앤디의 무죄 가능성을 알게 된다. 하지만 노턴은 앤디가 석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앤디는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의 돈세탁과 부정한 금융거래를 처리해주는 데 매우 유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앤디가 자유롭게 나가면 교도소 내부의 비리를 폭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턴은 토미를 다른 교도소로 보내고, 앤디에게는 독방 징계를 내린다. 여기에서 추리소설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앤디를 감옥에 가둔 것은 법원만이 아니다. 진실을 알고도 진실을 묻어버리는 권력이 또 하나의 감옥을 만든 것이다. 토미는 앤디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일종의 증거 제공자다.하지만 노턴은 그 증거가 법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한다. 토미 사건 이후 앤디는 오랫동안 침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앤디는 레드에게 멕시코의 지와타네호(Zihuatanejo)라는 장소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자유롭게 된다면 그곳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레드에게도 함께 가자고 암시한다. 앤디는 레드에게 구해달라고 한 작은 바위망치로 리타 헤이워드의 대형 포스터를 건 자리 뒤를 오랜 세월 조금씩 파낸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작은 망치 하나로 감옥의 콘크리트 벽을 뚫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누구나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만 볼 뿐이다.
마침내 어느 날 아침 교도관들이 인원 점검을 한다. 그런데 앤디가 사라졌다. 감방은 잠겨 있었다. 앤디는 어디에도 없다. 교도소 전체를 뒤져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노턴이 앤디의 방에 있는 포스터를 찢는다. 그 순간 벽에 거대한 구멍이 드러난다. 앤디는 이미 그곳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그가 지나간 곳은 하수관이었다. 즉 쇼생크 교도소 자체가 거대한 밀실이었던 셈이다. 누구도 그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앤디는 단순히 몸만 빠져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교도소장 노턴의 부패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한다. 또한 자신이 미리 만들어놓은 피터 스티븐스라는 신분을 이용해 돈과 자산을 회수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는다. 즉 탈출은 즉흥적인 도주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준비된 인생 재설계다. 앤디가 사라진 뒤 레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출소한다. 그러나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레드가 곧바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사회는 오히려 낯설다. 이른바 제도화가 그의 정신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레드는 앤디가 과거에 말해준 장소를 기억한다. 메인주의 작은 들판에 있는 돌담. 그곳에서 그는 앤디가 숨겨놓은 돈과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는 레드에게 멕시코로 오라고 말한다. 이 결말에서 앤디의 탈출은 레드의 탈출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탈출이 다른 사람의 정신적 탈출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추리소설로서 뛰어난 구조
이 작품을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처음에는 범죄가 있다. 앤디의 아내와 그녀의 연인이 살해됐다. 그러나 작품의 진짜 범죄자는 단순히 엘우드 블래치 한 사람이 아니다. 앤디를 억울하게 감옥에 보낸 사법제도, 진실을 알고도 덮어버린 교도소장 노턴, 죄수를 착취하는 교도소 시스템 그리고 돈을 위해 정의를 희생하는 권력 등이 함께 사건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범죄는 개인적 범죄에서 제도적 범죄로 확대된다. 그리고 추리 구조의 중심에 앤디라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 존재한다. 앤디는 주먹으로 싸우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지식과 인내와 계산으로 싸운다.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도 칼도 아니다. 시간과 지성이다. 그리고 인물 구성은 레드라는 소설의 서술 화자와 인간적인 연결고리를 만든다. 레드는 앤디를 관찰하면서 자신도 변화한다. 따라서 독자는 앤디의 탈출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레드가 다시 인간적인 삶을 되찾는 과정까지 따라가게 된다.
영화보다 원작이 더 매력적 추리물이다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은 이 작품을 세계적인 대중문화의 명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원작은 영화보다 레드의 관찰과 추론이 더욱 강하게 살아 있다. 영화에서는 앤디가 탈출하는 장면의 시각적 쾌감이 크지만, 소설에서는 독자가 레드와 함께 앤디의 행동을 해석해야 한다. 또 원작에서는 앤디의 탈출이 훨씬 오랜 기간의 계획으로 묘사되고, 피터 스티븐스라는 가짜 신분과 금융적 준비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원작은 영화보다 오히려 계획과 단서와 추론이라는 추리소설적 성격이 선명하다. 그리고 소설에서 얻는 희망이라는 주제는 추리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작품의 가장 명확한 주제는 희망이다. 앤디에게 희망은 추리적 행동의 원동력이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탈출을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 계획하에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모았고 행동에 옮겨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앤디는 범인을 찾는 탐정이 아니지만 탐정의 기본적인 능력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나의 생각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톨스토이 원작 신을 알고 계신다. 다만 기다리신다라는 단편과 매우 유사하지만 대놓고 모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누명을 쓴 사람이 감옥에서 흙을 조금씩 파서 탈출하고자 하는 소설의 뼈대는 유사하지만 톨스토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감옥에서 노인이 되어 버렸고, 스티브 킹의 경우 주인공을 감옥을 탈출했다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는 스티브 킹의 소설 주인공이 20년이나 투옥생활을 하고 탈옥을 한데에는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앤디가 그냥 감옥의 벽을 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가능하다는 스스로가 포기한 마음을 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앤디가 뚫은 것은 콘크리트 벽을 넘어서서 그동안 감옥이 인간에게 만들어놓은 심리적 벽을 뚫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레드는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아오면서 자유를 두려워하게 되었지만 감옥 밖으로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앤디의 메시지는 레드의 정신이 아직 갇혀 있는 그 감옥까지도 부셔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앤디의 탈출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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