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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도 추리소설인가?

소설책

by 북스톰 2026. 9. 15.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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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도 추리소설인가?

 

 

톨스토이의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God Sees the Truth, But Waits)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혹은 도덕적 단편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플라톤 카라타예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평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자세히 읽으면 이 소설에는 살인사건, 누명, 숨겨진 범인, 위조된 증거, 단서, 용의자의 행동, 탐문, 26년 뒤의 재수사, 범인의 자백, 그리고 사건의 뒤늦은 해결이라는 추리소설의 핵심 구조가 거의 모두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는 묻혀버린 진실을 26년 동안 추적하는 역추리·심리추리소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토리 속으로

주인공은 러시아의 상인 이반 드미트리치 악시오노프(Aksionov)다. 젊은 악시오노프는 장사를 하는 평범한 상인이다. 어느 날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아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가지 말라고 한다. 꿈속에서 남편이 흰머리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시오노프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길을 떠난다. 여행 도중 그는 다른 상인을 만나 친해진다. 두 사람은 한 여관에서 함께 묵는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악시오노프가 먼저 길을 떠난 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상인이 방에서 목이 베인 채 살해된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악시오노프를 추적한다. 수색 과정에서 그의 가방에서 피 묻은 칼이 발견된다. 악시오노프는 자신이 그 칼을 본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황증거는 너무나 불리하다. 피해자와 같은 여관에 있었다. 피해자보다 먼저 떠났다. 피해자는 살해되었다. 악시오노프의 짐에서 피 묻은 칼이 나왔다. 결국 악시오노프는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그는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시베리아로 보내진다. 통상 추리소설에서는 유능한 탐정이 증거의 외관과 증거의 실체를 구별한다. 하지만 악시오노프 사건의 경찰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짜 증거가 진짜 진실을 압도한다. 그런데 악시오노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법정이 아니다. 아내가 면회를 왔을 때다. 아내는 처음에는 남편을 믿으려고 한다. 국가가 자신을 의심한 것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다. 그 순간 악시오노프는 깨닫는다. 세상 누구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결국 신에게 의지한다. 악시오노프는 시베리아에서 26년을 보낸다. 젊은 상인이었던 그는 이제 흰 머리와 긴 수염을 가진 노인이 된다. 그동안 그의 삶은 완전히 사라진다. 아내는 죽고 자식들도 성장해 그를 거의 잊는다.

그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성자들의 삶에 관한 책을 읽으며 다른 죄수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다. 어느 날 시베리아 감옥에 새로운 죄수들이 들어온다. 그중 한 사람이 마카르 세묘니치다. 그는 악시오노프와 같은 고향 출신이다. 이때부터 독자는 새로운 추리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마카르는 과거에 말을 훔친 혐의로 감옥에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한다. 자신은 과거에 훨씬 더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들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악시오노프가 자신의 사건을 이야기하자 마카르는 묘하게 반응한다. 악시오노프가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자 마카르는 이상한 말을 한다. 악시오노프는 수사관이 아니지만, 과거 사건을 기억하고 새로운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발언의 이상점을 포착하고 과거의 증거와 현재의 행동을 연결하여 범인을 특정한다. 그런데 마카르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밀 터널을 판다. 어느 날 밤 악시오노프는 우연히 땅속에서 흙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카르가 터널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카르는 악시오노프에게 협조하라고 요구한다. 말하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한다. 그런데 그는 마카르를 고발하지 않는다. 감옥의 관리자가 죄수들에게 묻는다. 복수하고 싶지만, 마카르가 자신처럼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을 생각한다. 그날 밤 마카르가 악시오노프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마카르는 마침내 모든 것을 고백한다. 자신이 그 상인을 죽였고, 악시오노프의 가방에 칼을 넣어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가장 뛰어난 추리적 장치가 등장한다. 악시오노프는 마카르를 폭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카르를 보호했다. 그런데 바로 그 침묵이 범인의 양심을 자극하여 자백을 만들어낸다. 마카르는 자신의 범행을 공식적으로 자백한다. 결국 당국은 악시오노프가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의 석방 명령이 내려진다. 그런데 악시오노프는 이미 죽었다. 석방 명령이 도착했을 때 그는 세상을 떠난 뒤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이다.

 

 

추리소설적 트릭들

이 작품에서 가장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던 트릭은 먼저 피 묻은 칼이다. 마카르라는 진자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칼을 악시오노프의 짐에 넣는다. 따라서 경찰은 실제 범행을 조사하기보다 조작된 증거를 조사하게 된다. 이것은 현대 추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거 조작형 트릭의 원형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칼 자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마카르는 악시오노프의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과잉반응의 단서다. 범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오래된 사건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범인은 그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에는 미묘한 균열이 생긴다. 악시오노프는 바로 그 균열을 읽어낸다. 이것은 물리적 증거보다 심리적 증거를 중요하게 보는 추리 방식이다. 세 번째로 가장 독창적인 트릭은 바로 26년의 시간이다. 2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단순한 소성의 시공적 배경이 아니다. 범인이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목격자와 증거와 피해자의 가족관계도 무너지고 모든 수사기관의 관심도 사라진 후에 진범이 피해자와 같은 감옥에 들어온다. 이 시간 동안 결국 악시오노프의 시간은 신에게 의지해 이미 용서해버릴 수도 있느 시간으로 변해버린 후가 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

내가 만일 무기징역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악시오노프라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진범 마카르를 찾아 벌주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범죄가 누명이라는 진실을 알리는 것일까? 이제 청춘이 아니고 남은 삶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혈기로 복수를 꿈꾸지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명이라는 엄청난 억울함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톨스토이 작가는 악시오노프가 진범 마카르를 용서하는 것으로 소설을 완성시킨다. 일견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밝히고 죄를 벗어나는 장면 없이 소설이 끝난다는 것이 나로서는 못내 아쉽다. 그런데 악시오노프는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진실을 알고 신께 자신의 운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국가의 법적 판단과 신의 판단을 대립시키는 구조를 취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신의 영역으로 기운 뒤였을 것이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라는 제목의 의미는 하나의 미스터리로서 진실은 언제 밝혀질 것인가?라는 시간의 개념이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신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너무 늦게 밝혀지지만 신의 시간 속에서는 다른 차원과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진실이 밝혀지고 악시오노프로 상징되는 인간의 운명은 사람들이 아픔과 억울함 넘어 신의 영역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는 이 독서체험은 무척이나 새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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