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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버』를 추리소설로 읽는 법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6. 9. 14.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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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버를 추리소설로 읽는 법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조사하는 이야기

로이스 로리의 더 기버(The Giver)는 사실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감춰진 진실을 찾기위해 단서를 추적하고 독자가 기존의 인식을 수정해 가는 서사라고 정의한다면 더 기버는 매우 흥미로운 추리소설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범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 자체를 숨긴다는 데 있다. 독자는 주인공 조너스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정체를 하나씩 추론하게 된다. 따라서 더 기버의 미스터리는 누가 범인인가?”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로이스 로리의 더 기버를 처음 읽으면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본질을 조금 넓혀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리소설의 핵심을 숨겨진 사실이 있고, 독자가 여러 단서를 통해 그 사실에 접근하며, 마지막에 기존의 인식이 뒤집히는 서사라고 한다면 더 기버는 상당히 정교한 추리소설적 구조를 갖는다. 이 작품에서 숨겨진 것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다. 이 사회가 실제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크게 10개의 추리 구조가 존재한다.

 

1. 복선추리

추리소설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법 가운데 하나가 복선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작가는 나중에 의미를 갖게 될 작은 정보를 미리 배치한다. 더 기버의 시작부터 조너스는 12월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독자는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12월이 가까워진다는 언급이 반복되고, 곧 조너스가 열두 살이 되는 중요한 의식이 열린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작품은 처음부터 독자에게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불안감을 심는다. 결국 더 기버의 복선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인 것이다.

 

2. 레드헤링

통상적으로 추리소설에서 레드헤링(red herring)은 독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장치다. 더 기버의 가장 거대한 레드헤링은 바로 공동체의 평화다. 처음 보면 이 사회는 완벽해 보인다. 전쟁이 없고, 범죄도 거의 없고 직업도 적절하게 배정되며 가족도 안정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는 처음에는 이 사회를 일종의 이상사회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조금씩 이상한 점이 나타난다. 왜 사람들이 색깔을 모르는가? 왜 사람들은 감정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는가? 왜 어떤 질문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가? 이때 독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통 밀실이 공간적 트릭이라면 더 기버의 공동체는 사회적 밀실이라 할 수 있다.

 

 

3. 정보 은폐 추리

독자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전지적 관찰자가 아니다. 조너스가 모르는 것은 독자도 모른다. 예를 들어 조너스는 release라는 말을 계속 듣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든 사람도 release되고, 규칙을 어긴 사람도 release되고, 성장하지 못하는 아기도 release된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정보 지연이다.

 

4. 언어 트릭

더 기버에서 가장 뛰어난 추리 장치는 releas’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롭다.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아니다. 처벌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방출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조너스도 독자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동체 밖의 Elsewhere로 보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중에 조너스가 아버지가 쌍둥이 아기 중 한 명을 release하는 영상을 보면서 모든 의미가 뒤집힌다. 아버지는 작은 아기에게 주사를 놓고, 아기는 움직임을 멈춘다. 조너스는 그 순간 release가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일반적인 반전보다 더 정교하다. 사건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를 뒤집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증거가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더 기버에서는 증거가 거짓인 것이 아니라 증거를 설명하는 언어가 거짓이다. 이 점에서 더 기버는 언어 자체를 트릭으로 사용한다.

 

 

5. ‘색깔이라는 시각적 단서

조너스가 처음으로 빨간색을 보기 시작하는 장면도 추리소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사과나 사람의 머리카락 등에서 조너스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색의 변화를 감지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더 기버에게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색깔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독자 역시 깨닫는다. 이 사회에서는 색깔 자체가 제거되어 있었다. 이것은 탐정소설의 이상 징후(anomaly)와 같다. 셜록 홈스가 평범한 발자국 하나에서 사건의 비밀을 발견한다면 조너스는 평범한 사과의 색에서 세계의 비밀을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더 기버의 독창성이다.

 

 

6. 미제 사건

조너스에게 더 기버가 과거에 다른 후계자를 두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수수께끼다. “우리는 지난번 선택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왜 실패했는지 처음에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인물의 이름이 로즈메리라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지고, 그녀가 왜 release를 선택했는지도 한참 뒤에 밝혀진다. 더 나아가 그녀가 더 기버의 딸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공개된다. 이것은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과거 사건의 재구성이다. 현재의 사건을 이해하려면 과거의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과거 사건은 현재의 범죄 동기를 설명하지만, 더 기버에서는 과거 사건이 현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설명한다.

 

 

7. 탐정의 체험

전통적인 탐정은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한다. 하지만 조너스에게는 그런 증거가 없다. 그 대신 더 기버가 기억을 전달한다. 눈이 내리고, 말이 달리고 전쟁이 일어나며 사람이 죽는다. 이런 기억들이 쌓이면서 조너스는 자신의 세계가 무엇을 삭제했는지 알게 된다. 따라서 기억은 일종의 증거물이다.

 

 

8. 클로즈드 서클

통상 클로즈드 서클은 추리소설에서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나 한정된 용의자 집단 안에서 내부인이 범행하는 설정을 뜻하며, 영미권추리소설에서는 물리적 고립보다 용의자 범위의 제한에 초점을 둔다 ,이 작품에서 역시 폐쇄공간은 중요한 장치다. 더 기버에서 공동체는 일종의 거대한 폐쇄공간이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실상 거대한 밀실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전통적 밀실에서는 살인자가 밀실 안에 갇힌다. 더 기버에서는 모든 사람이 밀실 안에 갇혀 있다. 이것이 더 기버의 폐쇄공간 트릭이 갖는 사회철학적 차원이다.

 

 

9. 반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조너스가 아버지의 release 장면을 보는 부분이다. 독자는 처음에는 조너스의 아버지를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는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다. 가족에게도 친절하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아기를 죽인다. 이것만 보면 아버지가 범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더 깊은 반전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단지 사회가 정해준 업무다. 그는 살인을 하면서도 자신이 살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여기에서 더 기버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범인 개념을 해체한다. 더 기버에서는 범죄자가 오히려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진짜 범인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10. 열린 결말

마지막으로 현대적인 추리기법이 나온다. 조너스는 가브리엘을 데리고 공동체를 탈출한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조너스는 눈 덮인 언덕을 발견하고 썰매를 탄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빛과 음악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Elsewhere인지, 아니면 조너스가 죽어가면서 경험하는 마지막 환상인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통적인 추리소설과 정반대다. 그러나 더 기버는 마지막에 해답을 독자에게 넘긴다. 과연 조너스는 살아남았는가? Elsewhere는 실제 장소인가? 그곳에는 정말 사람들이 있는가? 아니면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죽은 것인가? 이렇게 열린 결말을 끝으로 그 뒤수준에 대해서 독자가 탐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생각

이 작품을 읽고 나는 독재국가 혹은 먼 미래의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떠올리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더 기버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인간에게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일 것이다. 권력을 잡은 공동체는 전쟁과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과거를 제거했다. 그러나 과거를 제거하면서 사랑과 자유와 선택의 능력까지 제거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살인을 하면서도 그것을 살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도 세계의 몇몇 나라들은 위정자들에 의해 정보가 통제되고 공동체가 비논리적으로 지배당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거나 망각된 사회도 있으리라. 이 작품에서 조너스가 더 기버에게서 기억을 받을 때마다 감춰진 세계가 복원된다. 눈이 복원되고, 색깔이 복원되고, 사랑이 복원되고, 고통이 복원되고, 마침내 죽음의 의미까지 복원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기억은 증거이고, 조너스는 추리소설의 탐정이며, 공동체는 범죄 현장이다. 인간은 원천적으로 자유인이다. 권력자에 의해 고통을 제거당한다고 해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지겠는가? 권력자에 의해 아픈 기억을 제거당한다고 해서 인간은 더 평화로워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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