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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점 여인> 오정희 –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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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톰 2023. 10. 1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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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점 여인> 오정희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오정희의 상징적 소설세계

    오정희의 소설 인물들은 저녁에서 밤에 이르는 저 불가사의 한 시간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상징되어 있다. 대부분의 상징은 선험적으로 혹은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상징의 세계에 태어나서 상징의 여러 작용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체험하여 체계화한 상징들의 창고이다. 그래서 많은 상징이 우리에게 어떤 의식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 말은 상징작용이 이미 우리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이다. 상징의 자의성이나 규칙성에도 불구하고 상징은 의미 이상의 매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때문에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그 상징성의 매력에 열광하게 하게 한다.

    오정희의 등단작인 <완구점 여인>은 다분히 난해하면서도 비극적인 작품이다. 오정희는 과거의 기억을 의식의 흐름을 통해 자유롭고도 분방하게 퍼 올려 기록하며 현재의 세계 인식의 잣대를 사용해 텍스트를 형상화한다. 이 작품에서부터 줄곧 과거의 기억과 그것이 담고 있는 죽음과 버겁기 짝이 없는 삶과의 관계가 소설 속에 녹아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로 어둠의 이미지가 작중에 상징성을 띄고 자리하고 있다.

 

완구점 여인의 소설세계

     작품의 모두에서 여고생으로 보이는 작중 여성 화자는 작품의 모두에서 보여지듯 어둠과 빛 그리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면서 교차하는 세계에 그녀는 기대와 공포를 느낀다. 완구점 여인의 여성화자는 어둠 속에서 산만하고 흐트러지고 더럽혀진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오히려 정결하다거나 깨끗한 것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낀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놓인 그들의 질서가 두려우며 정확하게 열려진 두 개의 서랍들은 시커멓게 입을 벌려 어둠을 빨아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질서와 정결함을 두려워하는 정신적 상처를 지닌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상처에는 어둠과 질서와 욕망과 공포가 뒤섞여있다. 그 상처의 원인은 어린 시절이 충격이었고 그 내용은 죽은 동생, 아버지, 가정부에서 새어머니가 된 여인 그리고 당시의 세계 자체가 된다. 세계의 질서에 대한 반감은 세계 자체에 대한 반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도피처로서의 어둠 속에 존재하고자 한다.

    성인이 된 그녀는 도벽과 동성애자의 성향을 보인다. 그곳은 이른바 어둠의 세계이다. 작중 화자는 남성성 즉 여성 속에 내재하는 이른바 아니마의 충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성애의 동인 또한 그녀의 도벽처럼 세계의 질서에 저항하는 그녀의 행위이다어둠의 이미지는 그 속에서는 안정된 자신을 확보하게 되는 반면, 밝음의 세계에서 반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어둠의 의미는 공포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욕망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공포적 욕망의 지향점은 환멸로 치닫는다.

 

성장이 아닌 내면화되는 성숙

     완구점 여인과 하룻밤을 지낸 그녀는 다음날 아침에 심한 수치심을 느꼈고 눈물 자국으로 얼굴이 번질번질해진 여인을 보고는 다시는 그녀에게 가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밤의 공간의 어둠의 이미지와 낮의 공간인 빛의 이미지가 대립되고 있다. 그녀는 어둠, 즉 밤의 상징 체계 안에서 완구점 여인과의 정사하는 꿈을 꾸게 되었고, 꿈이 깨고 난 뒤 밝음 즉 빛의 상징 체계 안에서 관능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혐오하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녀의 공간은 갑각류의 그것처럼 좀은 공간이고 그녀는 거기에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증오의 증폭에는 동생의 죽음, 어머니, 아버지, 학교 교사 등의 성인으로 상징되는 기성사회에 대한 부분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집안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가정부에 대한 피해의식과 대결의식은 그녀로 하여금 여성의 대립자로서 동성애자로 성격지어준 원인이 된다.

    완구점 여인의 오뚜기처럼 저녁의 게임에서 죽은 엄마가 그려놓았던 아이들의 모습 역시 팔다리가 없는 익명적 아이들의 피해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성은 대개 오정희 소설의 배경을 이룬다. 또한 오정희 소설에서 캐릭터가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체험의 형상화이다. 자아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바로 상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아가 여기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과 희열이 바로 인생의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과 희열은 도대체 어떻게 느껴지는 걸까? 오정희의 소설에서는 바로 상징을 통해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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