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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자는 「횡보문단회상기」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일제의 검열이 사라진 자유로운 상태에서 염상섭이 「삼대」에 대해 언급할 때 나온 말이다. 소위 심파다이저라 규정한 인물에 대해 염상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祖.父.孫의 三代를 다시 명확히 규정한다면 祖父는 「萬歲」 前의 사람이요, 父親은 萬歲後의 허탈 상태에서 自墮落한 생활에 헤매던 無理想, 無解決인 자연주의문학의 본질과도 같이, 현실 폭로를 상징한 「否定的」인 인물이며 孫子의 代에 와서 비로소 새 길을 찾아들려고 허덕이다가 손에 잡힌 것이, 그 소위 심파다이저라고 하는 左翼에의 동조자 혹은 동정자라는 것이었다......(중략)....자기의 愛國思想과 이에 따르는 모든 행동을 左翼에 同調하는 길로 돌리어, 독립운동을 潛行的으로 실천하는 길 -- 요샛말로 하자면 地下工作이라할까? 하여간 속에서 치밀어 내어뿜는 熱과 울분을 이 심파다이즈 - 동조- 하는 창구멍으로 내뿜으려 하였던 것이요, 또 이것이 實踐의 수단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염상섭의 말 대로라면 동정자를 등장시킨 것은 식민지 치하의 울분을 폭발시키기 위한 지식인 작가의 현실 고발적 동기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일제의 압제에 항거해 애국 사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작가 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의 검열 하에서 그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한계 상황 하에서 작가 염상섭이 만들어 낸 동정자의 의미는 어떠한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돈 많은 친일파의자손이 독립투사인 친구를 도는다는 발상을 그럴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그런 해동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정자와 독립운동을 하는 주의자는 영원히 동행할 수가 없는 조건이 바로 일제하의 조건이다. 그런데 본래 동정자와 주의자와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비밀리에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밀착되어 있다. <사랑과 죄>의 이해춘에게서 <무화과>의 이원영으로 흘러 내려가는 동정자와 당대의 현실이 그들의 관계를 이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일제의 탄압 때문에 변화될 수밖에 없었던 지하 항일 운동의 역사가 사실성을 혹보하기 위해성는 독립운동을 하는 주의자들을 형실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가치변화와 반일적 저항의 당위성, 돈, 애정, 윤리관념의 변화 등이 소위 동정자라는 부유한 인물이 보여주는 반일적 저항의 당위성은 점점 미약해졌다. 「백구」에 오면 지하독립단체는 갱단으로 호도되었다. 돈의 문제는 부정적 인식에서 점차 긍정적 인식으로 바뀌어가고 그 의미도 힘을 갖는 근대적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애정은 주동인물의 성격이나 의식을 변화시키는 힘이 약화된다. 또한 윤리관념으로 말하면 동정자들이 보여준 휴머니즘적 요소가 점점 퇴색되었다. 작품에 나타난 당대의 윤리는 체제에 의해 변질 된 것이다. 염상섭은 이러한 문제들을 인위적으로 개선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이 제반 문제들을 염상섭은 소설적 구상을 통해 선명히 드러냈다. 이때 선명히 드러났다는 것은 그가 냉정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설을 바라보았다는 뜻이고 그것은 그가 리얼리즘적 소설창작을 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동정자라는 인물은 염상섭의 문학인식 과정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중에서 동정자가 추구하는 삶이 바로 염상섭의 창작론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정자에 대한 이해는 염상섭소설에서 추구하는 세계관의 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염상섭 소설에서 특이한 점은 동정자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항일 문학을 시도해 보고자 한 점이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의 울분을 동정자를 통하여 내뿜으려 했다는 당대 작가의 윤리성를 보여주고 했다. 그러나 동정자라는 인물 설정 자체에 아이러니가 있었다. 유산자가 외면적으로 일제에 의심받지 않는 정도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발상은 위험한 것이어서 자신의 삶의 조건을 포기하는 길 아니면, 동정적 원조를 포기하는 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치적 인물이 식민지와 독립운동 사이에서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등장시켜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복해보고자 한 것은 염상섭적인 논리인 것이다. 아이러니를 아이러니로 극복하려는 인식론은 염상섭의 반골성을 드러낸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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