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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신라 김씨 왕가의 시조이다. 그런데 문무왕릉비 등 당대 금석문 상에서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는 추존왕 성한왕으로 언급되고 있어서 김알지가 과연 성한왕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다. 박씨 왕조의 시조 박혁거세나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와 달리 김알지 본인이 생전에 신라 왕위에 오르지는 않고 김알지의 후손들이 왕위에 올라 추존되었다. 《삼국사기》의 탈해 이사금 편에서 김알지는 탈해 이사금의 양자로 들어가 대보의 관직을 하사받았다. 말하자면 그는 석탈해의 아들인 된 셈이다. 석탈해도 외부인사인데 그의 양자인 김알지가 왕가에 편입된 것은 희한한 일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9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이것은 박혁거세 신화와 대단히 유사하다. 아마도 그 패턴을 모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삼국유사》에서도 김알지의 신화가 등장하는데 《삼국사기》와 전체적인 내용은 유사하다. 영평(永平) 3년 8월 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걸어가는데, 크고 밝은 빛이 시림(始林) 속에서 비치는 것이 보였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쳤는데 그 구름 속에 황금(黃金)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빛은 궤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또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이 모양을 호공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니 동남(童男)이 있는데 누웠다가 곧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赫居世)의 고사(故事)와도 같았으므로 그 말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閼知)라고 이름지었다. 알지란 곧 우리말로 소아(小兒)를 일컫는 것이다.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췄다. 왕은 길일(吉日)을 가려 그를 태자로 책봉했다. 그는 뒤에 태자의 자리를 파사왕(破娑王)에게 물려 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석탈해는 그를 태자로 책봉했지만 정작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박씨와 석씨의 개입이 있었으리라. 그는 금궤(金櫃)에서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라 했다. 후에 김알지의 칠세손자인 미추(未鄒))가 왕위에 올랐다. 이리하여 신라의 김씨(金氏)는 김알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추 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이칠(伊柒)의 딸이고,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조분왕의 딸이다. 미추왕은 완벽한 인맥으로 이루어진 위인이다. 자신은 김씨이고 어머니는 박씨이며 아내는 석씨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처가 김, 박, 석이라는 왕족의 성씨를 모두 가진 인물인 것이다. 그의 선조 김알지(閼智)는 계림에서 났는데 탈해왕이 데려다가 궁중에서 키워 후에 대보(大輔)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으며,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다. 그리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는 곧 미추왕의 아버지이다. 첨해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이로써 김알지의 후손인 미추 이사금이 왕위에 오르고 그는 김알지의 7세손이며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김알지의 실존 여부와 더불어 실존했다면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는 의견들도 상당량 존재한다. 문무왕릉비와 흥덕왕릉비 등에 등장하는 신라의 태조 성한왕(星漢王)을 김알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비문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과 달리 김알지는 등장하지 않으며 김성한이라는 인물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김알지를 일러 김성한이라고 부른 경우는 없었다.
어쩌면 김알지는 왕권을 위해 신화적으로 김씨를 격상하여 등장하게 한 신화상의 왕으로 볼 수 있다. 문무왕릉비, 흥덕왕릉비, 김인문 묘비에 기록된 성한왕의 금수레 설화와 알지 거서간이라는 이명을 지녔던 박혁거세의 난생 설화가 융합되어 삼국사기의 김알지 설화가 탄생한 것이 아니냐는 이론도 있다. 그렇다면 김알지는 후세에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씨와 석씨에 뒤이어 신라왕가에 나중에 편입된 김씨일가의 위상을 보완하는 신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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