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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초기를 프롤로그로 설정한다면 제일대 박혁거세부터 제오대 왕, 박파사(朴婆娑), 즉 파사이질금까지의 기간으로 소설의 배경기간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대에 걸친 약 백오십년 간의 역사를 소설로 집필하기 위해서는 세대별로 주인공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먼저 박혁거세가 주인공이 되고 그 다음으로는 외부세력이 정권 창출에 성공한 석탈해 그리고 김알지와 파사왕까지가 주인공의 범주에 들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왕위에 오른 파사왕과 즉위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인 김알지가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될 것이다.
캐스팅을 할 주요 인물들로는 석탈해왕, 그의 친아들들, 유리왕의 아들들, 육부족의 수장들, 가야국의 왕들 특히 김수로왕, 서성부인 왕비, 권력에 있는 박씨 왕족들 그리고 과거 진한의 열두개의 나라들을 유지하고 있던 각국가의 왕들도 보조인물로 등장하게 될 수 있다.
역사서에 따르면 석탈해는 파격적으로 외부인이 김알지를 태자로 인정한다. 그런데 김알지나 석탈해의 아들을 제치고 박파사가 등장한다. 파사왕 혹은 파사이사금의 재위기간은 서시 80년~112년이다. 파사왕은 신라 제5대 왕으로 성은 박, 이름은 파사, 칭호는 이사금. 탈해이사금 사후 태자 일성보다 뛰어난 위엄과 현명함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했으므로 백성들이 따랐다고 한다. 탈해왕에게는 물론 친아들이 있었지만 김알지를 태자로 책봉했다. 그런데 바로 선대인 유리왕의 아들인 박파사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이다.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고 그의 왕비는 허루 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 김씨이다. 그녀는 김알지의 소생으로 보인다. 재위 기간 동안 음즙벌국을 비롯하여 실직국·압독국 등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여 영토 확장에 힘썼고 특히 가야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유지했다. 석탈해의 인정과 박씨왕족들의 지원 그리고 김씨와의 결탁과정 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있었지만 그는 국내정치보다는 주로 외국과의 전쟁에 참가하면서 군사력을 지니게되어 갈등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파사이사금대에 신라는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이어서 주변 소국들을 활발히 정복했고, 특히 가야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유지했다. 94년(파사이사금 15)에 가야가 마두성을 포위했을 때 아찬 길원을 보내어 기병 1,000명을 거느리고 가서 쫓게 했고, 96년에 가야가 다시 남쪽 변경을 침범하여 가소성주 장세가 이를 막다가 전사하자 왕이 직접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크게 이겼다. 다음해에 가야를 치려 하다가 가야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여 중지했다.
102년에 음즙벌국과 실직곡국 사이에 경계다툼이 일어나 중재를 요청해오자, 가야 수로왕에게 자문을 구하여 문제의 땅을 음즙벌국에 귀속시켰다. 그러나 얼마 후 신라육부 내부의 알력에 개입한 음즙벌국을 쳐서 병합했다. 그러자 실직국·압독국 2국이 항복해와서 복속했다. 104년에 실직국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내어 토벌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으로 옮겼다.
복속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106년에는 압독국에 행차했고 마두성주를 시켜 가야를 치기도 했다. 108년에는 군사를 보내 비지국·다벌국·초팔국을 쳐서 합병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12개의 소국이 보이며 규모가 큰 것은 사천에서 오천명, 인구가, 작은 것은 육백에서 칠백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기간에 사로국을 제외한 진한의 나머지 11개 국가들 그리고 가야와 정치적인 야합을 하고 배신을 거듭한 파사왕은 외교와 정치적인 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인 것이다.
박파사는 신라초기 왕가에서 가장 적통인 사람이다. 박혁거세의 증손자이며 남해왕의 직계손자이고 전전대 왕인 유리왕의 차남이다. 물론 유리왕의 장남이 살아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대보를 역임하고 이미 태자로 책봉한 김알지가 당대로서의는 왕위 계승에 있어서 박파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김알지는 모든 면에서 당대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가 되어서 석탈해 왕으로부터 태자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미 태자로 확정된 김알지를 누르고 박파사가 훨씬 더 유능하고 뛰어난 위엄과 현명함으로 왕위에 올랐다. 박파사는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했으므로 백성들이 따랐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백성들로 서술된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라 내부에 있지 않고 가야와 야합과 배신을 하면서 주변국들을 점령하고 복속시키는 군사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석씨에게 인정받고 김씨를 왕비로 들였으며 박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후대에 미추왕의 전략과도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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