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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달과 노화의 설화는 백제에서 구비 전승되던 이야기이고 불교 측에서도 전해지는 설화이다. 지달은 백제 의 왕족 출신의 인물로 부친이 모함에 의해 쫒겨나 고구려와 인접한 변방에서 살았다. 건장하고 미남인 그는 노화라는 아리따운 여인과 사귀었다. 동네 이웃이자 연인이던 지달이 전쟁으로 인해 군에 들어가게 되자 무슨 일이 있어도 기다리겠다며 서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지달이 수자리로 입대하고 그후에 고구려 군대가 지달과 노화의 마을을 습격하면서 다른 처녀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지달이 앞도 뒤도 보지 않고 탈영하여 노화를 구하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지달은 노화를 찾기 위해 무작정 고구려 땅으로 가서 노화를 수소문하게 된다. 그는 고구려군에 쫒기고 잡혔다가 운 좋게 탈출하지만 탈진으로 인해 산속에 쓰러졌다. 그런데 극적으로 노승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한다. 우연히 지달과 재회하게 된다. 둘은 산 속을 통해 몰래몰래 백제의 땅에 도착하나, 때마침 고구려 군이 그 곳에 쳐들어오자 지달은 용기를 내어 고구려 군과 맞서 싸웠으며 이에 사기가 충전된 백제 군은 결국 고구려 군을 몰아내며 전투에 승리한다. 본래 지달은 탈영의 죄로 처벌을 받았어야 했으나 왕은 이번 전투에 지달의 공이 크니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처해주었으며 이후 지달과 노화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무령왕(501~523)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기나긴 전쟁은 백성들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변경에서 가까운 비리 마을에 백제 왕족 출신의 지달은 수자리 즉 국경을 지키던 임무의 병사로서 국경수비대 요원쯤으로 되는 자리로 입대를 했다. 지달이 입대후 2년 후 고구려군이 비리 마을을 습격해서 노화는 물론 모든 마을 처녀들이 잡혀갔다. 그 소식을 들은 지달은 노화가 걱정되어서 군대에서 탈출하여 고향 마을로 간다. 이 지점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국경수비대가 왜 고구려군이 자신의 지역으로 쳐들어왔는데 노화가 있는 마을을 보호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어느 지역이 고구려 군에 의해 초토화되고 여성들이 잡혀간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은 아마도 지달의 군이 주둔한 인근에 더 긴박한 전투가 벌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지달은 그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노화를 찾으러 탈영을 했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그야말로 엄청난 것으로 이해된다.
고구려 군에 모든 여인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지달은 노화를 찾아 국경을 넘은 노화를 찾아해매다가 고구려군에 잡히고 탈출하고 도망다니다가 탈진하여 쓰러진다. 그리고 노승에 의해 구원받고 3년 뒤 산속의 암자에서 나와 길을 가다가 길에 노화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지달이 입대 후 오년만에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아마도 노승이 도력으로 그녀가 암자 아래 산길을 가게 된 것을 알려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측 설화에서는 노승이 지달에게 말린 쌀과 잣 열매 세 개를 주고 여러 가지 도술과 위기를 모면하는 이적을 행하게하는데 그것은 불교 포교차원의 이야기로 변형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여간 지달은 노화를 데리고 백제의 박기성에 도착하였는데 고구려군이 다시 쳐들어왔고 지달은 백제군과 합세하여 처음엔 불리했던 싸움을 역전시키고 마침내 승리를 하게된다. 무령왕이 그의 공로를 치하하자 그는 스스로 탈영병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왕은 그의 탈영을 용서하고 공로를 치하한다. 결국 지달과 노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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