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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제 25대 사륜왕(舍輪王)의 시호(諡號)는 진지대왕(眞智大王)으로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왕비(王妃)는 기오공(起烏公)의 딸인 지도부인(知刀夫人)이다. 대건(大建) 8년 병신(丙申, 576)에 왕위(王位)에 올랐다. 고본(古本)에는 11년 기해(己亥, 579)라고 하였으나 오류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진지왕의 황음이라는 주색잡기는 대단히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당대의 미녀요, 유부녀인 도화녀와의 스캔들로도 널리 알려졌다.
대에 사량부(沙梁部) 민가(民家) 여인의 얼굴과 자태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 지증왕이 듣고 궁중에 불러들여 그녀를 범하려 하니 여인이 말하기를 여자가 지켜야 하는 일은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그녀는 남편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은 만승(萬乘)의 위엄으로도 마침내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격분한 지증왕이 말하기를 내가 너를 죽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자, 여인이 대답하기를 차라리 거리에서 죽음을 당하더라도 어찌 다른 마음 가지기를 원하겠느냐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지증왕이 롱으로 말하기를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하자, 그녀는 결국 되겠다고 말다. 그 말을 들은 지증왕은 그녀를 놓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해에 왕이 폐위되고 죽었는데 2년 후에 도화랑(桃花娘)의 남편도 역시 죽었다. 말하자면 도화녀는 정조를 지켰고 폐위한 뒤에도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던 호색한인 왕과 남편 역시 그녀를 떠나간 것이다.
괴기한 로맨스의 설화적 재생
그런데 실로 괴기한 사건이 왕과 남편의 죽 이후 벌어진다. 남편이 죽은 뒤 십 여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홀연히 지증왕이 평시(平時)와 같이 나타나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하길 네가 옛날에 허락한 것처럼, 지금 너의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잊지 못한 것이다. 죽어 귀신이 된 지증왕의 원혼이 도화녀의 남편이 죽기를 이년 동안이나 기다린 셈이다. 혹시 실제 죽지 않고 폐위당하여 숨어 지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고하니 부모가 소위 임금의 교시인데 어찌 피할 수 있겠냐며 딸을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지증왕의 귀신은 도화녀의 집에서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늘 오색(五色)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그리고 7일 후에 그 귀신은 홀연히 사라졌다. 여인은 이로 인하여 임신하여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할 때 천지가 진동하며, 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비형(鼻荊)이라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귀신 보는 화랑인 비형랑의 출생의 비밀인 것이다.
진평대왕(眞平大王)이 그 이상한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데려다 그 아이를 길렀다. 나이가 15세가 되자 집사(執事)라는 직책을 주었다. 매일 밤 멀리 나가서 놀자 왕이 용사(勇士) 50명을 시켜 지키게 하였으나 매번 월성(月城)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荒川) 언덕 위에 가서 귀신의 무리를 거느리고 놀았다. 말하자면 그는 귀신들의 왕이었다. 어느날 진편왕이 비형(鼻荊)을 불러 귀신을 거느리고 논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하자 비형랑(鼻荊郞)이 그렇다고 하였다. 왕이 비형랑에게 귀신의 무리를 이끌고 신원사(神元寺)의 북쪽 도랑에 다리를 놓게 했는 그는 칙명을 받들고 귀신들과 함께 큰돌을 다듬어 하룻 밤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런 까닭에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한다. 왕이 귀신의 무리 가운데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조정(朝廷)을 도울만한 자가 있느냐고 하자 비형랑은 길달(吉達)이란 자를 추천하여 국정을 돕게 한다. 이때 각간(角干) 임종(林宗)이 자식이 없었으므로 왕이 명령하여 아들로 삼게 하였다. 임종(林宗)은 길달(吉達)에게 명하여 흥륜사(興輪寺) 남쪽에 누문(樓門)을 세우게 하였더니, 길달(吉達)은 밤마다 그 문루(門樓) 위에 가서 잤으므로 그 문을 길달문(吉達門)이라 하였다. 하루는 길달(吉達)이 여우로 변하여 도망을 갔으므로 비형(鼻荊)이 귀신들로 하여금 그를 잡아 죽였다. 그러므로 그 귀신의 무리들은 비형(鼻荊)의 이름만 듣고도 두려워하며 달아났다. 사람들이 성스런 임금(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여기가 비형랑(鼻荊郞)의 집이다. 잡귀의 무리들은 이곳에 머물지 말라고 노래했다. 신라의 풍속에는 이 글을 붙여서 귀신을 물리쳤다고 한다. 기괴한 로맨스가 악귀를 물리치는 스토리로 새롭게 스토리텔링이 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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