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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는 선덕여왕을 얼마나 사모했을까?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4. 2. 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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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는 선덕여왕을 얼마나 사모했을까?

 

불의 신이 되어버린 지귀라는 남자

     일명 지귀설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집인 <수이전>에 수록되었으나 전해지지 않고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에 전해지고 있으며 <삼국유사> 4에도 일부 관련 설화가 보인다. 선덕 여왕 때에 지귀라는 사람이 여왕을 한번 보고는 여왕을 사모하다가 미쳐 버렸다. 어느 날 여왕이 지귀를 불러 행차를 따르도록 했다.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지귀는 탑 아래에서 잠들고 만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은 금팔지를 빼서 지귀의 가슴에 놓아 두고 갔다.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이 자신을 버려두고 가버린 것을 알고는 가슴이 타들어가 급기야 화신으로 변한다. 여왕이 팔찌를 둔 지귀의 가슴에서부터 불이 붙기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대목은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면 온몸이 불로 변할 수 있을 까 하는 점이다. <불로 화한 인간>은 하나의 레토릭에 불과하지만 지귀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지귀가 불귀신이 되어 온 세상에 떠돌아 다니며 방방곡곡을 태워버린다. 그런데 그 불귀신은 여왕을 찾아가서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애먼 백성들의 집만 태운 것이다. 결국 여왕은 백성들에게 주문을 지어 주어 대문에 붙이게 하였다. 그 후 백성들은 화재를 면하게 되었다.

 

불의 귀신 지귀는 누구인가

     지귀는 활리역(活里驛) 사람인데 역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아 천민일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소위 여왕의 행차 행렬에서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선덕여왕을 보았다. 그런데 여왕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고 끝내 미쳐 버렸다. 그야말로 한눈에 반한 그는 정신 이상이 될 정도로 여왕을 사모한 것이었다. 그런 내용을 알고 있던 여왕은 어느 날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지귀를 불렀다. 여왕은 지귀가 자신을 사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귀를 불렀다. 여왕이 절 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지귀는 바깥 탑 아래에서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은 지귀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금팔찌를 손목에서 빼어 자고 있는 지귀의 가슴에 놓고 갔다.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의 금팔찌를 발견하고 너무 기쁘고 아쉬운 나머지 더욱 더 사모의 정이 불타올라 이윽고 가슴속의 불길이 온몸으로 옮겨붙어 불귀신으로 변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고 지귀는 온통 불덩이리로 화하여 이른바 불귀신이 되어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자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선덕여왕이 백성들에게 주문을 지어 주어 대문에 붙이게 하니 이후 백성들은 화재를 당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여왕이 지어준 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志鬼心中火 -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 燒身變火神 - 몸을 태워 화신이 되었네.

流移滄海外 -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 不見不相親 -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

 

선덕여왕도 지귀를 좋아했을까?

     지귀설화는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문자로 정착된 설화이기 때문에 지귀라는 인물이 다르게 나오는 이본(異本)이들이 있다. 가령 민담설화집에 실린 지귀 설화에서는 선덕여왕을 흠모한 끝에 화신(火神)이 되어 선덕여왕이 다스리는 신라에서 화재가 나지 않도록 여왕을 돕고 다녔다고 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원통한 불귀신이 되어 신라와 여왕에게 해를 일으키고 다녔다는 결말의 설화와 대비되는 결말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과거 조부인 진흥왕과 부친인 진평왕 대에 이룩한 엄청나게 국토를 잃었다 고구려와 신라에 수십 개의 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교 쪽 문헌들은 선덕여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불교계 설화들에서 선덕여왕은 지혜롭고 신비로운 여왕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귀 설화>에서는 선덕여왕이 대단한 미녀로 등장한다. 진평왕이 60대에 서거하고 왕위에 오른 진덕여왕은 즉위 당시 사십대였을 것이다. 천 오백년 전에는 성형수술이나 화장술이 지금만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미모를 타고 났다고 해도 뛰어난 미녀라는 것은 설화 속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지귀한 첫눈에 반해서 미칠 정도의 미모는 아닐 것으로 추측이 된다. 당시의 호칭이 그녀를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경이나 주역에 조예가 깊었고 불교의 큰 후원자였다. 또한 인재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고 할 수도 있다. 김춘추, 김유신 외에도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내고 이들에게 일을 맡겼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왕을 따르는 지귀같은 천민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주었을 수도 있다. 사료에 의하면 김용춘 등 세명의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천민 지귀와 성골출신 여왕과의 로맨스를 상정하기 어렵지만 여왕의 관심과 배려는 지귀를 오해에 빠드렸을 공산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쓴 부적으로 지귀의 화마를 피했다는 것은 아마도 알아듣게 말로써 지귀를 설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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