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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황제가 조성한 연못에 아름답고 신비스런 풍경의 사자암이 나타나, 황제가 화공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그 신성한 땅을 찾게 했다고 한다. 이는 신라 땅에 그 대단한 축복받은 명승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대목이다. 또 평범한 청년들이 어느 날 수련하기로 마음먹고 백월산에서 부처가 됐다는 이야기로 신라에는 뛰어난 인재가 넘쳐난다고 은근히 자랑한 것이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성불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천30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백월산을 둘러싼 창원은 복된 땅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 낙동강 줄기가 여유롭게 흐르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에워싸고 있는 산들은 여인이 하늘을 보고 누운 형상의 길지라는 해석을 들려준다. 지금도 백월산에는 그 맥을 이은 절이 향불을 피우고 있고 전설의 현신을 꿈꾸며 수련하는 도사들도 가끔 만날 수 있다. 백월산은 해발 500m에도 못미치는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제법 험준하고 능선이 가파르게 경사가 급해 오르기가 쉽지 않다. 등산길 곳곳에 등산객들이 하나씩 올려 쌓은 돌탑들이 보이고 이곳에서 득도를 했다는 신라시대의 도인들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전설이 이곳에서 내려온다.
백월산 두 성인의 성도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는데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아있고, 수백 리 이어지는 참으로 거대한 산이다. 백월산에서 동남쪽 3천 보쯤 거리에 선천촌이 있다. 그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둘 다 풍채가 평범하지 않고 이 세상 밖의 뜻을 품으며 친구사이로 가까이 지냈다. 나이가 스무 살쯤 됐을 때 마을의 동북쪽 고개 너머 법적방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남쪽 치산촌 법종곡의 승도촌에 오래된 절이 있는데 머무를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과 소불전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대처승으로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생계를 꾸리며 서로 오갔지만 속세를 떠나려는 뜻을 잠시라도 잊지 않았다. 두 친구는 이미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으니 세상에 묶인 끈을 벗어버리고 더할 수 없는 도를 이루기 위해 가족을 떠나 깊은 골짜기에 숨기로 했다.
어느 밤에 꿈을 꾸는데 백호광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빛 팔이 드리워져 두 사람의 이마를 만졌다. 깨어나 꿈 이야기를 하자 두 사람이 똑같았다. 그들은 즉시 백호광이 온 서쪽방향인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달달박박스님은 북쪽 마루의 사자암에 자리를 잡고, 부득스님은 동쪽 마루의 돌무더기 아래 물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각기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열심히 미륵보살을 찾고, 박박은 한마음으로 미타보살에게 예불을 드렸다. 3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해가 저물 무렵 몸매가 아주 빼어나고 그윽한 기운을 풍기는 스무 살쯤 된 여자가 문득 북암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했다. 달달박박스님이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빨리 떠나 이곳에 머물지 말라며 암자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낭자는 남암으로 가 노힐부득에게도 하룻밤을 청했다. 노힐부득은 자신의 암자가 여자가 와서 더럽힐 곳은 아니지만 수행자가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라면서 그녀를 암자 안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했다.
노힐부득은 바로 옆에서 여자가 자는 동안 밤 깊도록 맑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염불을 외웠다. 그런데 밤이 이슥해질 무렵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 한다면서 해산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노힐부득은 애처로운 마음에 등불을 피워 여자가 아이를 낳도록 도왔다. 여자는 아이를 낳더니 목욕물을 부탁했다. 노힐부득은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마음이 어지러웠으나 항아리 욕조를 마련해 여자를 거기 앉히고, 새로 물을 끓여 여자의 몸을 씻겼다. 그러자 욕조 안의 물이 향기를 가득 피우면서 금빛의 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노힐이 크게 놀라자 여자가 노힐부득에게도 씻으라고 권했고 노힐은 사양하다가 이에 따랐다. 문득 정신이 상쾌하고 맑아지면서 피부가 금빛이 됐다. 그리고 그 곁을 보았더니 어느새 연대가 하나 나타났다. 여자는 노힐부득에게 연대위에 앉으라고 권하며 “나는 본디 관음보살이오. 스님이 대보리를 이루도록 와서 도운 것이라오”라고 말을 마친 후 사라졌다.
그런데 여자가 노힐부득의 암자로 간 걸 알게 된 달달박박이 노힐부득이 분명 계를 더럽혔을 것으로 여기고 와서 노힐부득을 보니 연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돼 밝은 빛을 내며 몸은 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고 연유를 물었다. 노힐부득이 연유를 설명하자 박박은 대성을 만나고도 모시지 못한 것을 탄식하자 노힐부득이 남은 금빛 즙으로 목욕을 권했고 달달박박이 씻자 노힐부득처럼 무량수불상이 돼 두 불상이 우뚝 마주보고 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며 “희귀한 일이 일어났어. 희귀한 일이”라며 감탄했다. 두 성인은 설법을 베풀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신라 경덕왕이 즉위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정유년(757)에 사람을 보내 큰 절을 짓고, 백월산 남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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