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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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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톰 2023. 8. 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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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단상

 

용서의 개념

용서(容恕) 영어로는 Forgiveness인 이 개념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와 반대되는 개념은 복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아도 보복이나 위해를 가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용서와 복수는 완전한 반대 개념은 아니다. 또한 체념 역시 용서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피동적인 체념과 능동적인 용서는 주체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용서의 정신상태

마음에서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는 것이 용서라면 복수는 부정적인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만족감을 얻는 보복행위가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해자가 자신과 동등한 최소한에 고통에 시달리지 않으면 용서보다는 복수를 택하기 마련이며 왜냐면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용서는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물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뒤 그 가해자가 마음을 고친 경우도 있지만, 가해자가 대인이 아닌 이상에는 일어나기 힘들며 설사 용서해도 가해자가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복수의 마음을 단념하고 화해를 한다면 과연 그것이 용서일까? 사실 용서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상황에 따른 정의는 더 많은 숙고를 요구한다.

 

,,기독교의 용서

공자의 도를 꿰뚫는 충서(忠恕)에 등장하는 서()는 용서에 관한 부분이다. 이 글자는 같을 여(), 마음 심()이 더해진 글자다. 그러므로 서는 나의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과 같게 하는 차원을 말한다.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른 욕망의 부딪침을 초월해야 얻을 수 있는 지난한 차원이 아닐까 한다.

통상 불교의 사바세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연에 의해 복잡한 상황하에 놓인다고 보고있다 이때 불교는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한과 분노는 마음을 어지럽히고 내면의 평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자아를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해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런 연후에 자비와 관용을 실천하게 된다. 자비는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며, 관용은 용서와 배려의 마음을 다른 존재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상태가 굳어진다면 그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한다. 아무리 친족이 살해당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없으며, 구원을 받으려면 최소한 마음 속에 불편함이 남아있더라도 원수를 미워하는 감정을 회개하려는 마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용서는 화해일까?

두 단어는 일견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화해를 한다면 그것은 용서를 한 것이나 진배없어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 만일 내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과 다시 예전처럼 지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용서가 스트레스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그건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는 말과 똑같다. 용서는 새로운 나, 즉 한차원 성장한 나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새로운 인식이어야 한다. 용서는 가해와 피해를 없었던 걸로 보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문제들을 더 높고 넓은 맥락 안에서 숙고한 결과가 아닐까? 말하자면 나에게 가해진 현실로서의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흔적이나 기억이 나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인식하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

간혹 사회에서 용서를 강요하는 억압적 분위기는 영사가 아니라 억지 화해이다. 사회적 이런 현상은 두 개념을 제대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싸울 때교사가 강요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화해다. 용서는 화해하는 척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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