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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페스트』를 심리추리소설로 읽기

소설책

by 북스톰 2026. 9. 1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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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페스트를 심리추리소설로 읽기

 

 

리외라는 탐정이 추적한 인간의 진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추리소설로 규정하기에는 소설 장르 분류상 무리가 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전형적인 구조도 없으며, 마지막에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폐쇄적인 사건의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개념을 텍스트 속에 숨겨진 원인과 인간의 진실을 단서에 의해 추적하는 서사라고 확장한다면 페스트는 흥미로운 심리 추리소설이 될 수도 있다. 스토리의 중심에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있다. 그는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알제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탐정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마지막에 자신이 바로 이 기록의 서술자였음을 밝힌다.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서술자가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추리적 서술 트릭이다.

 

 

트릭으로 볼 수 있는 근거들

페스트에서 첫 번째 트릭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쥐의 죽음이다. 소설은 통상적인 추리소설처럼 한 사람이 죽는 장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죽은 쥐들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시작한다. 의사인 리외가 진료실을 나서다가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 사건의 첫 번째 단서가 등장한다. 이후 죽은 쥐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시민들은 불안해한다. 그러나 당국과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취급한다. 곧 인간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발생하고 미셸이 죽는다. 카스텔은 마침내 그것이 페스트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구조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이상 징후 발생 그리고 사건의 단서가 축적되고 결국 사건의 정체를 발견하는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두 번째 트릭은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의학적 관찰과 환자의 증상, 사망자의 숫자를 종합하여 그 정체를 밝혀내는 탐정이 된다는 것이다. 리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감정을 억누르고 사실을 관찰하는 냉정한 탐정적 기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국처럼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환자가 늘어나고 죽음이 반복되자 그는 점차 개별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한다. 이것은 탐정의 기본적인 사고법과 같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이 사건 현장의 작은 흔적을 전체 사건의 구조로 확장하듯, 리외는 환자의 증상과 사망자의 증가를 통해 도시 전체의 위기를 추론한다. 그리고 페스트를 심리추리소설로 읽을 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로 리외라는 인간의 내면이다. 리외는 아내와 떨어져 있다. 아내는 요양을 위해 도시를 떠나 있다. 그런데 그는 도시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는 거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리외는 카뮈이 다른 작품 주인공인 이방인의 뫼르소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뫼르소가 감정을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표현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리외 역시 감정을 겉으로 많이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침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뫼르소의 침묵이 세계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태도라면, 리외의 침묵은 타인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행위에 가깝다. 이상의 근거들은 추리적 독서르 ㄹ통해 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리외는 누구인가

리외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타루와의 대화다. 타루가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조직하자 리외도 그 활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리외는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리외의 심리는 추리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동기 분석의 대상이 된다. 왜 리외는 계속 싸우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의사로서의 책임감이나 영웅주의 때문은 아니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답은 직업적 책임과 인간적 연대다. 리외는 페스트를 완전히 이길 수 있다고 믿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싸운다. 그것이 작가 카뮈의 역설이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해야 한다. 페스트를 잠시 물리칠 수는 있지만 페스트 자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의 싸움은 해결을 위한 추리라기보다 지속적인 저항을 위한 추리다.

 

 

 

오통의 아들의 사망 장면

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단서는 어린 오통의 아들이 죽어가는 장면으로 여기에서 리외의 철학을 결정하는 결정적 증거가 나온다. 카스텔의 혈청이 만들어지고 어린아이가 치료받지만 아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리외와 타루, 파늘루 신부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이 장면은 리외의 세계관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심리적 증거물이다. 파늘루에게 페스트는 처음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죄 없는 어린아이가 끔찍하게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의 신앙은 흔들린다. 반면 리외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는 어린아이의 죽음에 어떤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가 죄가 없다는 사실과 아이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카뮈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존재한다면, 그 고통에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는 대신 그 고통을 줄이는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리외에게 의사는 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가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할 수는 있다. 이것이 리외의 윤리다.

 

 

 

파늘루 신부의 변화

작중 인물의 심리를 추리하는 작업에서 파늘루 신부의 변화도 하나의 중요한 심리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처음 그는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죽음을 목격한 뒤 그의 논리는 흔들린다. 그의 두 번째 설교에서는 첫 번째 설교보다 훨씬 복잡한 태도가 나타난다. 이제 그는 고통을 단순한 신의 처벌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후 병에 걸린 그는 의사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않고 죽음에 자신을 맡긴다. 리외는 그의 죽음을 전형적인 페스트인지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의심스러운 사례로 기록한다. 여기서 카뮈는 재미있는 추리적 장치를 사용한다. 파늘루의 사망 원인을 확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신의 뜻 때문에 죽었는가? 페스트 때문에 죽었는가? 신앙 때문에 치료를 거부했는가? 아니면 인간의 이성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다른 질병이었는가? 작가는 그의 죽음을 작품의 미해결 사건 구조로 남겨두었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는 마지막에 탐정이 사건을 설명한다. 그러나 카뮈는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남겨둔다. 그 결과 독자는 리외와 함께 사건을 계속 추리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반전

페스트의 가장 중요한 추리적 트릭은 마지막에 밝혀진다. 독자는 처음부터 한 명의 서술자가 오랑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서술자가 바로 리외였음이 밝혀진다. 이것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리외는 왜 자신의 이름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는가?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남기려 한다.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났고, 타루의 기록도 활용했으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한다. 따라서 리외는 소설의 서술자이면서 동시에 등장인물, 의사, 관찰자, 기록자, 탐정 등이 되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결말

오랑의 문이 다시 열리고 시민들은 가족과 연인을 만나며 환호한다. 그러나 리외는 축제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다. 그는 페스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페스트는 끝났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페스트의 균은 오랫동안 잠복할 수 있고, 언젠가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언제든 인간 사회에 다시 출현할 수 있는 악과 죽음의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추리소설적인 의미가 결정적으로 살아난다. 사건이 종결되었는데도 사건의 원인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따라서 리외의 기록은 사건 해결 보고서가 아니라 미래의 사건을 대비하기 위한 증언록이 된다. 그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과거의 고통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은 기억의 방역이고 질병의 재발을 막는 것은 의학만이 아니다. 망각을 막는 기억 역시 인간을 지키는 방역 행위가 된다.

 

 

 

나의 생각

페스트를 읽으면 지금 여기, 놓여있는 내 삶의 조건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의 부정과 권력자들의 지나친 욕심, 가진 자들의 이기심 등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뮈가 이 작품에서 진짜로 추적하고자 했던 바가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의 무관심과 부정과 이기심이 아닐까 한다. 소설에서 오랑시 당국은 처음부터 페스트라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신에게 직접 피해가 오기 전까지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범죄자인 코타르는 전염병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자신만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리외와 타루는 공동체 전체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돌아보면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의 무관심과 부정과 이기심이 잘못을 되풀이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카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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