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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니다
김소진의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방식으로 서술되는 기억의 서사가 특이한 편이다. 유년시절부터 성년기까지 그의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기억이 소설쓰기의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무의식에는 가난과 아버지로 인한 수치심, 모성 강박과 성적 욕구, 열등감과 죄책감 등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창문을 통해 그 무의식의 기억을 연상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펼쳐진다.
김소진의 마지막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작중화자인 나(민홍)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자청하여 미아리 셋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간 진짜 이유는 재개발로 인하여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장석조네 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변소에 갔다오다가 빠루를 밟는 바람에 욕쟁이 함경도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깨고 눈사람으로 덮어 놓고 하루 동안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해질녘 엄마에게 연탄집게로 맞으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엄마는 지청구조차 내리지 않았고 짠지 단지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사실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은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과거에 깨달았던 것이 아니고, 성인이 된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지금 깨달은 것이다. 과거의 상처로 고통당하던 그는 이 세계는 자신과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무의식의 상처에서 벗어난다. 그는 비로소 나를 가두었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기억 속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과거의 나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김소진의 소설사적 의미는 소설의 경향이나 흐름과 상관없이 당대의 전형성이나 대표성을 갖는 문학사적 흐름과는 별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김소진은 독특한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해냄으로써 90년대의 새로운 방식이 아닌 과거의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특수성을 지닌다. 평단에 의하면 90년대 작가들은 이전과 달리 가벼운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때에 등단한 김소진은 6,70년대 글쓰기 방식으로 회귀한다. 전통적이고 오래된 어휘들의 사용과 기억을 재현하는 서술 방식은 과거 회귀적이다. 사회적 문제상과 궁핍한 서민들의 삶, 남북문제와 통일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그의 소설 속에 산재해있다. 염상섭, 최일남, 황석영 등의 도시 서민의 소설 담론의 맥을 이은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김소진의 소설은 80년대 서울 변두리 서민의 삶을 리얼리티를 가지고 묘사했다. 특히 작중인물의 내적 갈등과 감정을 무게있게 집필했다. 이러한 점은 모든 소설가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시대적 흐름과 경향을 따를 필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작가들은 통상 자신의 과거에서 기억해낸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삼을 때가 많다. 특히 김소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진처럼 기억을 재생하여 그 생생한 장면을 마치 영상파일을 재 업로드하는 느낌을 준다. 그 기억을 의식으로 환원하여 그것과 마주하여 하나의 상황 으로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 상세한 기억에서 김소진은 기억 재현을 마치 다시 소환된 과거 체험처럼 만들어 그것과 대화하고 공존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억을 서사화하여 과거의 일들을 지금의 현실 앞에 재현시킨다면 과거의 아픔이나 고통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소설은 치유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비작가들이라면 소설가들이 과거를 소환하여 재구성하는 연습을 김소진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변두리에 대한 기억을 주변부를 서사의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김소진은 변두리 서민의 삶을 풍성한 어휘로 의미있게 형상화하였다. 그는 민중들의 생활 현실 생생하게 재현하는 리얼리즘 소설을 추구했다. 그래서 김소진의 풍부한 어휘를 활용한 독특한 문체를 지닌 소설가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김소진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풍부한 순우리말이 소설적 상징성을 갖는다. 그가 순우리말을 빈번하게 구사하는 것은 일부로 그렇게 서술하는 것이다. 작가 연보에 의하면 그는 새우리말큰사전을 몇번이나 읽으면서 우리말 어휘, 어구, 속담 등을 노트에 기록 정리했다고 한다. 무사에게 칼과 창이 있다면 작가에게는 그의 무기에 해당하는 어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작가에게는 어휘력이 중요하다. 그것은 풍부한 단어의 총체적인 표현력 속에서 소설 작품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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