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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는 없다>- 최윤 : 소외를 넘어서는 전략

소설책

by 북스톰 2023. 8. 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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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는 없다>- 최윤 : 소외를 넘어서는 전략

 

소외된 여성의 존재

   -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를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 이 지문은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의 모두이다. 이 팻말은 작중 주인공이 베네치아의 어느 창가에서 새벽녘에 문득 보게 된 것으로 베네치아의 뱃사공들에게 주는 문구로 보인다. 그러나 경계의 내용은 항해하는 사공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의 선택적 의미가 될 것이다.

    수로와 난간, 겨울과 안개, 미로와 두려움은 병치되어 있지만 선택의 대상이다. 어차피 삶은 선택적이다. 그리고 그 삶은 각자의 몫이다. 누가 대신 살아 준다거나 타인들에 의해서 폄하되거나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여자의 삶이건 남자의 삶이건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은 자기자신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그 삶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편견은 성적인 조건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자행되어온 여성이기에 겪는 소외는 정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모티브 중 하나일 것이다.

 

내용요약

    이 작품에서 하나코라는 별명을 가진 여인은 대학졸업 무렵 취업을 앞두고 조건이나 목적 없이 자주 만나는 남자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나 그 남자들은 그녀의 존재에 대해 진실하게 혹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하나코라는 별명의 여자는 소위 남자들의 세계에서 한낱 시간보내기용의 여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여자지만 코 하나는 볼만하다는 의미의 별명인 것이다. 그것은 남성 세계의 편견이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성들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이지만 실제 남성들에게 하나코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다. 하나코는 남성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고 진실한 내면을 보여주고 대했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가식이나 시간 때우기 혹은 밀회할 수 있는 정부 정도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코는 달랐다. 그녀는 언제나 남성들과 동등하다고 여겼고 그들의 이야기를 인내심과 흥미를 갖고 들어주었고 그들과 친구임을 주장했다. 남성들에게 있어 하나코와 하나코에 있어 남성들의 존재는 다른 것이다. 상대방을 인식하고 존중해주는 가에 따라 존재의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 우월주의적 사회에서 하나코라는 여자의 존재성은 왜곡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결국 하나코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성 친구들에게는 없는 듯 보였던 하나코는, 그러나 그녀의 고유한 삶 속에는 있었다.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 의미공간에서 이를 읽어 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성공하여 귀국한다는 하나코의 모습을 접하게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존재와 소외

    작가 최윤은 인간관계의 작위성을 겪게 되면서 진정성이 훼손된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전반의 문제로 인식을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여성성의 문제의식은 작중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여성으로서의 존재성은 남성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왜곡되면서도 하나코는 오히려 남성들을 감싸고 이해하고 대등하게 공존하고자 한다. 남성들이 몰랐던 하나코의 존재는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성공으로 더욱 그 존재를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다른 페미니즘 계열의 작품과는 다르게 여성의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사회적 억압이나 피해로 인해 야기되는 제반 문제를 다루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 동인인 남성들의 편협함과 심지어 비이성적이고 유치한 남성성이란 게 인간이라는 개체의 온전한 인격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온전한 것인가를 문제삼고 있다.

 

유치한 남성우월의식 비판

    이 작품은 성숙한 여성이 갖는 사회관과 남성들로부터 자유롭고 오히려 월등한 의식수준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고 요약한다면 이제까지 논의해온 여성주의 문학이란 용어나 존재자체도 부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하나코는 없다>를 면밀하게 읽어나가면 유치하고 편협한 남성 우월주의에 의해 상대적으로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페미니즘 문학도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아를 확인하고자하는 욕망은 있게 마련인데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삶을 다각도로 모색한 결과 하나코는 여성의 사회적 피해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여성들을 억압해왔던 남성성이라는 게 얼마나 유치하고 초라한 것임을 깨닫고 남성들에게 그러한 진실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준다. 작가의 시선은 여성적인 혹은 페미니스트로서의 편협성이라는 몇몇 오해를 넘어서서 남성보다 어른스러운 입장에서 남성들의 치기를 내려다본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이며 동시에 비페미니즘 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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