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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바비도는 로마 교황 계열의 사제단의 비리에 항거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가 끝내 화형당하는 봉제 직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하여 당대 현실의 부조리와 인간성 회복이라는 대결 구조가 신의 범박애주의적 신앙과 교단의 허구라는 대립을 통하여 한국전후사회의 부조리와 휴머니즘의 대립으로 형상화하였다. 바비도에서 실제 봉제사 바비도의 순교라는 사건은 휴머니즘을 부각시킨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특기할 만한 점은 인물의 인식 차원에서 세계관이 노정되고 있다.
어제까지 옳았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이 옳던 것이 하루아침에 정반대인 극악(極惡)으로 변하는 법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비위에 맞으면 옳고 비위에 거슬리면 그르단 말이냐?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의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 밧줄에 묶여서 라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란 말이야?(작중에서)
바비도는 주인공이 순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물의 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 성경 영역 비밀독회에 참석하면서 현실의 부조리함을 인식하고 분노를 느끼는 바비도를 통하여 작가의 세계관이 노정되는 것이다. 바비도는 자신이 결정한 가치관을 선택하고 그 쪽으로 가고자 한다. 태자가 사형장에 와서 회개하면 목숨을 구해 준다고 하지만 그는 그의 신념을 따른다. 그의 성자적인 태도는 세계관을 지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죽음도 불사한다.
바비도의 죽음 선택은 세계관의 선택이다. 바비도는 로마 교황의 교단의 비리와 종교적 제약이라는 압박에 항거하고 나름대로의 종교적 모색을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삶을 모색하기 위해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길을 찾아 자아를 확인하고 무언가를 찾는 데에서 가장 문제되는 부분의 하나는 인물의 형상화이다. 결국 소설은 누가 무슨 일을 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문제적 인물은 소위 전형성을 가진 존재로서 소설 세계를 대표하고 세계관을 보지한 사람이다. 전형성이란 하나의 집단, 계층, 성격 등을 작중인물의 성향으로서 가지며 텍스트 내의 성격은 공시적 보편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물의 전형성은 그가 지닌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계관은 작품의 형식 미학을 통괄하는 일관된 사고 체계로서 작품의 유기성을 아우른다. 세계관은 하나의 집단, 사회 계급, 구성원들을 결합시키고 그들을 다른 집단과 대립시켜 주는 절망, 감정, 사상의 총체이다. 그러나 형체 없는 이 집단의식은 개인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의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문학 텍스트를 통해 현현시킨다.
바비도가 종교의 평등과 휴머니즘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은 김성한이 바비도를 통해 전후 한국사회의 휴머니즘을 부르짖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바비도의 휴머니즘적 세계관은 바로 작가 정신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선험적 체계로서의 사상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것은 생활, 이성, 감정, 의식 등을 포함하며 미래에 대한 욕망을 포함한다. 이러한 총체적 입장으로서의 세계관은 사회집단을 매개로 하며 그 사회집단은 총체성을 띈 인간관을 향한 의식 즉 전망성에 대한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길을 찾는다는 것은 전형성의 인물의 자아와 단절된 세계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세계를 찾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식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의 형식으로서의 틀(논리)을 요구한다. 그런데 김성한의 인물이 그려내는 세계관은 형식을 형상화하기보다는 혼란된 논리과 신념의 틀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세계관을 실천하는 문제적 인물이 종교적 신념에 의한 타락한 종교사제단 항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과 그 삶을 형상화한 텍스트는 과거의 세계관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틀을 만들어 냈다. 루카치나 골드만의 이론에서 그것은 분명 세계관에 이르지 못한 감정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신념은 종교를 절대적으로 만드는 믿음이어서 바비도를 순교하는 성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종교의 평등을 위해 순교하면서까지 집행자들의 평등성도 인정한다. 이러한 평등에 입각한 휴머니즘적 세계관은 전후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그것은 좌우익, 월남 실향민, 피난민, 지역 원주민의 갈등이 첨예화한 당대 혼란기의 진정한 휴머니즘적 세계관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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