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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하성란의 세번째 작품집이다. 이 소설집은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비롯하여 2년여간 문예지 등에 발표된 열한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첫소설집 『루빈의 술잔』과 두번째 소설집 『옆집 여자』에서 잿빛으로 얼룩진 도시의 일상을 견뎌내는 현대인들의 면모를 정밀하고 세련되게 그려내어 문학성을 인정받은 하성란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탄탄한 서사구조와 절제된 언어구사가 돋보이는 단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성란의 초기 소설에서 두드러졌던 디테일들에 대한 정밀묘사 대신 상징과 이미지의 비중이 강화됨으로써 좀더 잘 읽히면서도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탐구심이 빛나는 것이 이 소설집의 특징이다. 작가가 시도하는 새로운 양식 실험이 의미를 갖게 되며, 작품집 곳곳에 잠복한 미스터리적 요소와 컬트 영화적 감각을 주목받을 만하다.
표제작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프랑스의 전래설화이며 작곡가 오펜바흐에 의해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던 『블루비어드』(Blue-beard)의 엽기적인 영주와 그의 여섯 아내들과 겹쳐 읽을 때 그 의미가 한층 되살아난다. 깔끔한 매너와 많은 재산을 가진 교포 제이슨(푸른수염)과 늦은 결혼을 하여 뉴질랜드로 이민온 ‘나’는 남편의 중국계 친구 챙이 항상 부부 사이에 끼여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마침내 남편과 챙의 수상한 관계를 알아챈 아내는 제이슨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떠나려다가, 그녀가 혼수로 해온 오동나무 장롱에 갇혀 죽을 고비를 맞는다. 남편과 챙의 억류에서 간신히 풀려나온 아내는 나중에서야 제이슨의 정체를 확연히 알게 된다. 자칫 그녀의 관이 될 뻔한 오동나무 장롱을 매개로 감옥 같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실감함과 동시에 이후에도 계속될 제이슨의 또 다른 아내들의 불행을 예상하는 그녀는 실로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인 셈이다.
「별 모양의 얼룩」은 몇년 전 대형 화재 참사로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사건을 극화하고 있다. 참사 1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화재현장에 모여든 희생자 부모들에게 인근의 가게 주인이 그날 한 어린애가 화재 전 현장에서 벗어났다는 주장을 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되며 작품에 아연 팽팽한 긴박감이 고조된다. 자신의 아이가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부모들의 가슴에 번져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절제된 문장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독자들의 긴장과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파리」는 한 시골 파출소 순경의 총기난사 사건을 그렸고, 사냥터의 총기 인명사고를 다룬 「밤의 밀렵」에서 작가가 관심을 두는 것은 폐쇄적인 시골 부락에서 벌어지는 주민들의 암묵적인 살인 공모와 왜곡된 집단주의적 성향이 어떻게 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가에 있다.
하성란 작가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하성란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 벌어지는 각종의 사건과 사고들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데, 단순히 그 경과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이 벌어진 배경과 추이를 다각도로 분석하며 뛰어난 심리묘사를 통해 인물들을 창조하고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파헤친다는 데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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