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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염상섭 해방공간의 좌우익 대립형상화

소설책

by 북스톰 2023. 11. 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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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염상섭 해방공간의 좌우익 대립형상화

 

50세 작가 염상섭의 단편 소설 읽기

     지난주 여행 중에 북카페에서 염상섭 단편집을 읽었다. 해방공간에 발표된 작품들이고 노년의 염상섭이라느 대가의 필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은 당시 다른 단편들에 비해 구체적인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으며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열망에 부응되어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작중의 정창근은 만주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서 석달 넘게 고생을 하고 귀국한 사람이다. 해방공간에서 그의 부친은 고향의 도위원장이 되어 있었는데 불과 서너달 전에 그의 부친은 신사참배 거부를 주창하던 민족주의자였던 관계로 일본인 순사부장인 굴전(堀田)에게 끌려가 두 부자는 그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창근은 해방공간에서 부친덕에 출세욕을 갖고 있었고 은행원 출신이었지만 당장 코앞의 큰 이익이나 좋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진지함이나 필요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치안부 차장으로 권총을 찬 순사가 되었고 일인 굴전은 취조를 당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전직 순사부장이었던 굴정상차(堀田常次)의 타태사건(墮胎事件)을 취조하게 된 창근은 복수심과 장난기가 동한다.

    창근은 굴전을 취조하고 나서 그 이튿날 사표를 쓴다 그리고 일본과의 은원이나 복수심은 털어 버리고 신시대의 학문을 닦을 것을 결심하며 이 작품은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당시 촌스러운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암시하듯 일제하에 일본 경찰에게 엉덩이를 걷어채이고 그 밑을 기어다니는 수모와 일제의 폭압 하에 수많은 동포가 희생당한 사실은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되고마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게 된다. 원대한 민족의 이상을 생각한다든지 동양의 장래와 세계의 평화를 염려하는 이가 되어 일본에 대한 보복을 단념하는 대목은 나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상을 추구하는 염상섭의 시야

    염상섭은 일제와의 관계에 연연하기보다는 재빨리 현실에서 스스로의 앞날을 모색하기에 바쁘다. 그것은 염상섭이 당시 봉건 잔재의 청산과 일제 여독을 하루빨리 몰아내자는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 넘어서기와 좌우익 대립, 새시대 개막이라는 혼란 상태를 극복하는 한 방법론으로서 과거 청산이라는 염상섭의 대전제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이 대립되어 그에 따른 문학가들의 분규도 진행되었지만 염상섭은 중간파의 입장에서 문학의 순수성 강조와 그를 보장하기 위한 문학에서의 자유가 문학의 사회적 실천에 있어 필수적으로 보았고 분단 이후의 논쟁보다는 과거 청산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일본으로 규정되는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기를 주장했고 그러한 그의 세계관은 위에서 보듯 여러 작품에 투영되었다.

 

중견작가의 혜안을 다시 본 감회

    작가는 이념적 선택의 문제를 유보한 채, 기구한 상황에 처한 한 가족을 등장시킴으로써 목전의 문제를 우회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만나게 된 한 가족이란 일본인 여인과 결혼하여 일본인 행세를 하며 만주에서 살았던 한국인과 일본인 처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일본인들의 틈에 끼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뜻 한국인이라고 나설 수도 없는 아들 부부를 한국의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염상섭은 친일파, 민족주의파, 좌우익의 편가르기보다는 포용과 관용의 자세를 견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작품의 주제나 색깔을 다소 밋밋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해방의 아들󰡕,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등의 작품들이 문학적 형상화와 단편소설로서의 압축미가 다소 떨어지는 것은 다음의 몇몇 이유에 기인한다 하겠다. 당시 시대적 맥락과 염상섭의 해방 공간에서의 입장에서 해방공간에서의 작품들은 좌우익을 포괄하고 초월하려던 그의 다소 무모한 주장을 담아내려 했고 실제 그러한 시도는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불완전한 논리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실제 작품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십년 정도의 공백기를 가진 노작가 염상섭의 재기 기간에 발표된 그의 소작들은 해방의 기쁨과 일제 잔재의 청산 등을 흥분된 분위기에서 그려냈기 때문에 완성도의 측면에서 실패한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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