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치인들이 정치에 대한 철학적인 언급을 하면서 여당 비대위원장이 이제 삼국지 같은 정치를 하지 말자고 했다. 물론 위, 오, 촉이 상대국가의 단점이나 약점이 생기면 즉각 공격하는 대의없는 오직 승리만을 노리는 것을 비판 한 것이리라.거기에는 인류애나 인간의 본연적인 선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삼국지를 잘 읽으면 선과 대의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처세에 따라 대의도 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마의라는 조조의 책사를 다시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사마의는 죽고 나서 진나라의 고조(高祖)로 추존된 황제이다. 그는 생전에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서, 조조를 시작으로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에 걸쳐 위나라를 섬겨 황제의 신하로서 최고직인 태위와 태부를 모두 지냈다. 죽어서는 황제의 반열에 올라 중국사에서도 손꼽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맞상대이자 북벌의 최종 상대자였다. 손의 주유가 제갈량과 맞서려고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고 사마의는 후반부의 주요인물로 부상한다. 그리고 실제로 삼국지에서 정사에서도 최후의 승자였다 그러나 소설책에서는 사마의는 제갈량보다는 한 수 아래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늘이 내린 제갈량에게는 겨우 사마의 만이 간신히 상대가 되었고 그것도 위나라가 촉에 비해 국력이 강했기 때문에 사마의가 이겼다고 서술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굴력을 유지시키고 그 강한 조조의 휘하를 선택한 것이 바로 사마의인 것이다. 삼국지 전반부가 조조와 유비의 라이벌 대결이라면 후반부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라이벌이 된다. 이렇게 사마의는 작품의 후반부를 긴장감있게 차지하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사마의는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한 직후 처음 등장하여 조조에게 이 기세로 익주까지 정벌하라고 진언하지만 조조가 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찍이 조조가 세 마리의 말(馬)이 한 구유통에서 구유를 먹는 꿈을 꾸었을 때 조조는 이를 마등, 마초 삼부자로 여겼다. 그런데 조조가 죽기 직전 똑같은 꿈을 꾸자 가후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가후는 이를 록마로 해석하여 길조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마(司馬)씨의 득세를 뜻했다. 조조 사후에 역시 사마의는 득세했다.
사마의는 조비에게 건의하여 대군을 다섯 길로 나누어 촉한을 협공하게 한다. 그러나 재빨리 방도를 강구한 제갈량은 군사들을 각기 파견하고 등지로 하여금 오와 동맹을 다시 맺게 하여 겨우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쳤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로써 사마의가 제갈량 맞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조비 사후 조예가 그 뒤를 잇는 과정에서 사마의가 옹주와 양주의 경비를 맡고 끝까지 저항하자 촉군은 그를 어쩌지 못한다. 제갈량은 그의 방어전술을 평가하면서 위나라의 진정한 장수라면 사마의 한 사람 뿐이라고 칭찬한다. 제갈량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가 군을 지휘한다면 북벌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제갈량의 1차 북벌에서 지휘관 조진이 계속 패하자 조예는 다시 사마의를 기용한다. 사마의는 신속히 제갈량과 내통 중인 맹달을 평정하고 장합을 파견해 가정의 마속을 패배시킨다. 가정에서 마속이 패하자 사마의는 군을 이끌고 곧바로 서성으로 진군한다. 성에 군사가 없었던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고 성루에 올라 악기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의심이 많아서 제갈량이 복병을 숨겨놓았을 것이라 의심하고 퇴각한다.
한편 위군은 진창에서 궂은 날씨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실패하고 말아서 다시 장안으로 퇴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위나라 조정에서 퇴각하라는 전서를 보냈는데, 전서가 도착한 시점이 궂은 날씨 다 버텨내고 맑아져서 진군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반드시 치고나올 것이라 예견한 반면, 조진은 그럴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자 사마의가 조진에게 제갈량이 기습을 해오지 않으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치마를 두른 채 조진에게 절을 하는 벌칙을 받겠다고 한다. 이에 조진은 자신이 틀리면 조예께서 내리신 말 한 필을 선물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마의의 예상이 옳았고 조진은 적의 기습을 제대로 당하나 겨우 사마의에게 구원을 받아 살아남았다. 이에 조진은 상심하고 부끄러워 병이 재발하던 중 제갈량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받고 화병으로 죽어버린다.
제갈량의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이 전략을 쓰다. 위연은 사마의와 단기로 겨루다가 거짓으로 후퇴하여 사마의를 상방곡으로 유인한다. 여기서 문관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대장군인 위연과 싸운다. 제갈량은 상방곡 안으로 들어온 사마의를 화공을 이용하여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지만, 하늘은 사마의 편이었다. 때마침 내린 큰 비 때문에 사마의는 화공속에서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다 이긴 싸움에서 폭우 때문에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가 달아나자 제갈량은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며 크게 한탄했다. 또한 사마의는 상방곡에서 당한 뒤 싸우지 않고 진채를 지켰고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여자 옷과 관을 보내 집에만 처박혀 있는 아녀자에 비유하여 모욕한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비방을 참고 참고 최후의 승리를 도모했다.
실제 삼국지에서 주요인물은 유비, 조조, 제갈량, 강유로 스토리라인이 이어진다. 그런데 사마의는 주인공 급의 인물이 아니면서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게된다. 위연과 면전에서 마주쳤으나 제갈량이 사마의를 유인해오라고 바로 죽일 수 있는 사마의를 위연이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사마의를 계곡에 몰아넣고 제갈량이 화공으로 사마의를 몰아붙였는데 폭우가 쏟아져 사마의는 살아났다.
삼국지 중후반부터 본격 등장하여 조조대 부터 4대 조씨 정권의 책사로 활약한 그는 제갈량의 북벌을 전략과 계책으로 수차례 막아내며 유일하게 제갈량에게 패배를 맛보게했으며 칠순나이에 권력을 장악하고 아들 사마소와 손자 사마염에 이르러 삼국을 통일하는 진나라가 완성시킨 토대를 마련했다. 사실 사마의는 낭고지상이라고 조조때부터 왕위를 찬탈할 관상이란 이유로 철저히 견제를 받았다. 그는 조씨 정권의 견제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며 참아내며 행동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권력을 잡았고 결국 왕가를 이루어냈다. 그것은 운이라고 보다 철저한 준비와 실천에서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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