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치유라는 단어의 영어는 healing이고 그 사전적 정의는 치유, 치료, 힐링효과 그리고 회복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서 그럼 치유와 치료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 의학적 소견들을 종합하면 치유의 주체는 본인 자신이고 모든 치유 작업은 본질적으로 셀프 힐링이며, 힐러는 조력자이다. 말하자면 저절로 자연적으로 낫게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반면 치료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진단하고 다룰 수 있도록 법이 규정한 자격을 갖춘 의학적, 정신과적 전문가의 주관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인들에 의해 병이 처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음이 병들거나 정신적인 밸런스를 잃은 독자가 문학 텍스트를 읽고 치유 즉 힐링이 되었다는 것은 작가나 평론가가 독자에게 문학적 세례를 준 것이 아니고 독자 스스로가 그 작품에서 무언가 자신의 마음에 변화를 줄만한 것을 발견하거나 깨달음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어느정도 기분이 좋아지거나 찌든 일상으로부터 무언가 힘이 될 만한 힐링 요소를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적 치유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몫이 되는 셈이다.
나는 문학 서적을 읽고 기분이 좋아지는 감동적인 스토리 혹은 유머 아니면 나를 밝고 환하게 만들어주는 웃기는 장면 등을 통해 소위 힐링이라는 것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힐링적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원리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카타르시스와 관련이 있다. 소위 카타르시스(Catharsis)란 독자 내면에 방치된 상처를 픽션의 비극을 통해 직면하고 비로소 슬픔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에 나오는 말로서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며, 쾌적한 장식이 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의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한다.
주인공이 처절하게 당하는 비극의 스토리에 공감하게 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주인공을 옹호하며 화를 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 정화됨을 느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싫컷 울거나 화를 내고 나면 답답한 감정이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나면 자신 내면의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제법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자신 속에 쌓있던 불순물과 같은 삶의 찌꺼기들을 배설한다거나 정화 혹은 중심을 잡는 등의 방식으로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이나 희열, 전율 배설 정도로 생각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쾌감, 희열, 전율, 배설등과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가령 비극적 스토리에서 억압받던 주인공이 명백한 악에게 대항하여 통렬한 복수에 성공하는 상황은 사실 직접적으로 카타르시스와 관계가 없다. 카타르시스의 작용은 통쾌한 복수를 통해 억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주인공의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복수에 실패한 주인공의 좌절을 보며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이 북받쳐올라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내면의 응어리를 덜어내는 상황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승자의 쾌감이 아니라 패자의 서글픔에 동조하여 같이 슬퍼하면서 나의 슬픔을 덜어내는 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을 내보내서 정화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힐링소설들은 그런 비극이 아니라 과거의 용기 없던 나와 마주해서 용기를 낸다든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보고 내가 스스로 자립하는 힘이 낸다든가하는 방식으로 소극적 카타르시스적인 작품들이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스스로 힐링되었다고 치부하는 부분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못 느끼기도 하지만 소위 힐링 소설을 읽고 스스로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패망 정도의 엄청난 실망이 없어도 독자의 절망과 슬픔을 컨트롤하면서 스스로 힐링이라고 믿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힐링은 어쩌면 모두가 스스로 미리 준비한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지 힐링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결국 힐링의 효과는 독자 스스로의 기본적인 마음이 있어야 작동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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