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7f94a714bae2f226.html 견훤설화 제작자의 의도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견훤설화 제작자의 의도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4. 3. 15. 00:24

본문

반응형

견훤설화 제작자의 의도

 

설화의 성격은 매우 부정적이다

      견훤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견훤의 친부는 괴물이다. 그것도 성폭행을 일삼는 부정적인 사내이다. 그는 밤마다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밤손님으로 견훤의 생모인 그 처녀의 인생을 망친 자다. 매일 밤 처녀의 방에 찾아와 성관계를 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처녀의 방에 무단 침입해 자기 욕망만 채우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처녀의 아버지는 괴한에게 무력으로 맞선다거나 관아에 신고하는 등의 행위를 취하지 않는다. 그 괴물 같은 남자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처녀의 아버지는 소위 신라 지방 토호이었다. 호족인 그를 제압할 정도로 괴물은 엄청난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밤마다 흰 얼굴에 보라색 옷을 입은 정체모를 남자를 잡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 아비는 겨우 꾀를 내어 남자의 옷에 실이 묶인 바늘을 꿰어두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눈치챈 괴물은 자신은 천상에서 내려왔으며 딸은 이미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곤 사라진다. 실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 지렁이가 바늘이 꿰여 죽어 있었고 딸은 배가 불러와 아비에게 버림받는다. 딸은 혼자서 남의 집 밭을 매주며 아이를 기르고 그 아이가 훗날 견훤이 되었다는 것이 설화의 내용이다.

 

견훤의 임신과 출산은 과연 축복인가?

    지렁이는 환형동물문 지렁이아강에 속한 생물들의 총칭. 한자로 지룡(地龍), 토룡(土龍), 구인(蚯蚓)이라고도 한다. 지렁이는 '지룡'이 바뀌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렇다면 지렁이는 땅의 용이라할 수 있다. 그런데 밤에 나타난 그가 용의 모습이 아닌 지렁이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용의 몸에 바늘과 실이 있었다면 견훤은 용의 자식이라 할 수 있지만 실물이 지렁이인 이상 그는 지렁이의 아들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의 지렁이 관련 설화로는 못된 며느리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자기는 고기를 먹고 시어머니에게는 지렁이를 고기라면서 속여서 먹이던 도중 남편이 그걸 알게 되지만 소심한 남편은 아무 말 못하고 결국 참다못한 하늘이 며느리에게 벼락을 내려 지렁이로 만들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도 지렁이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유사한 다른 설화로는 성정이 악한 며느리가 눈먼 시어머니에게 지렁이를 고기라고 속여서 먹였는데, 그 지렁이가 고기라고 철석같이 믿은 시어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아들에게 먹이려고 아껴두었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내놓아서 아들이 화가 나서 악한 아내를 내쫓았다는 설화도 있다. 이처럼 부정적이거나 악한 이미지인 지렁이를 차용한 설화는 견훤 측에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견훤과 반대 측에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고려조 등의 후세에 지어졌을 확률도 있다.

 

견훤과 아자개의 관계

    견훤의 부친 아자개는 본래 장군이 아닌 농부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훗날 집안을 일으켜서 성주가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반 농민이라기보다는 막강한 재력을 갖추고, 지방 토호 노릇을 하던 대지주였다는 것이다. <견훤 열전>에서는 아자개가 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면 견훤의 어머니가 그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었다는 대목이 있기에 말 그대로 농부, 즉 소규모 자영농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그는 두 부인에게서 오남일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견훤이었다. 견훤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자가 세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국경이 맞닿는 바람에 분쟁이 일어나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고도 한다. 견훤이 고려가 사벌주를 집어삼키려는 속셈을 알고 자신이 먼저 사벌주를 무력으로 삼키려다 아자개와 동생들의 반대가 완강하여 포기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사이가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심지어 신라 주변의 패권을 두고 후백제와 고려가 싸울 때 인근의 예천군이나 안동시의 일부가 견훤의 세력권으로 들어갔을 때조차도 견훤 입장에서는 고향이었을 사벌주는 끝끝내 왕건의 편으로 남았으니 아들 견훤의 대업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훼방을 놓았다. 이 대목에서 친 아들이 아닐 정도로 가문의 적대적이었다면 견훤에 대한 평가와 설화 제작이 만들어졌다면 아자개가 아들을 지렁이의 아들로 평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남 견훤이 스스로 지룡 즉 용의 자식이라든가 백제 부여씨 왕통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아자개의 혈통을 부정하고 후백제왕을 자처하자 아자개로서는 당황하지 않았을까? 결국 아자개는 918년 아들인 견훤의 나라 후백제가 아닌 왕건에게 귀부한다. 왕건은 크게 기뻐하여 고려로 온 아자개를 마치 아버지를 모시듯이 우대하였으며, 환영식을 열어 대대적으로 연회를 베풀었다. 일개 작은 호족인 아자개를 고려의 대호족들 이상으로 대우하고는 아자개의 사벌주를 흡수할 수 있었다. 견훤의 평판과 정통성을 떨어뜨리고 왕건을 띄우고 견훤을 깎아내리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견훤이 지렁이의 자식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