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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신라와 후백제 그리고 고려의 삼각관계는 전반부에 후백제의 군사력이 가장 강했다고 한다. 진성 여왕 때인 9세기 후반부터 신라 사회가 점점 어지러워지자, 신라 조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견훤은 먼저 무진주 즉, 현재의 광주 지방을 점령한 뒤 900년에 완산주, 지금의 전주 지방에 들어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나라 이름은 백제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후백제라고 했다. 견훤은 왕으로 즉위하고 풍부한 경제력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넓혀나갔다. 일본과 중국에 사신을 보내 후백제의 이름을 알렸고, 관제를 정비해 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후백제는 후삼국 중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했다. 927년에는 신라가 고려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인 뒤 경순왕을 임금으로 세웠고, 신라를 구원하려고 온 고려군과 지금의 경상북도 팔공산 전투에서 싸워 크게 이겼다. 이때 왕건이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갔다. 이때 견훤이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죽였다면 아마도 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했을 것이다.
후백제는 지리적으로 남서쪽에 있어서 북쪽과 동쪽의 통치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성정이 불같은 견훤은 신라의 경애왕을 죽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지방 반역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호족들을 마구 처단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후백제 내부에서도 애국애족의 통치이념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견훤은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백제와는 관련이 없던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전라도 지역을 근거로 나라를 세우면서 백제를 계승하고 의자왕의 원한을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백제가 멸망한 지 2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백제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전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훤은 후백제 측에서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신라의 군부를 상당량 숙청 혹은 죽였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살육과 처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견훤은 말 안듣는 아들들의 내환과 반란군들의 발호라는 외환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견훤의 친부인 아자개는 견훤과 원수같이 대립했고 아들 신검도 왕위를 찬탈했다. 견훤이 왕이 되었다면 아버지인 아자개와 대립하지만 아자개가 이미 죽은 왕건을 도와 견훤과 전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비협조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견훤은 부친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사벌주 등에 대한 배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일대의호복들은 자연스레 왕과 멀어지게 되고 반역의 가능성이 야기된다. 그리고 견훤이 왕이 되면 아들 신검이 태자가 될 것인데 욕심이 많은 신검은 아버지인 견훤왕와 대립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세력으로 왕위를 찬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후백제의 내부에는 부자형제(父子兄弟)의 불화로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십수 명의 왕비와 후궁들로부터 수십 명의 아들을 낳은 견훤은 넷째 아들이자 서출인 견금강(甄金剛)을 사랑하여 왕위를 전하려 하자, 적출인 장자 신검이 불쾌히 여겨 그 친아우들인 양검(良劍)과 용검(龍劍), 이 두 사람과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한 사건을 추론한다면 신검은 견훤이 왕이었다 해도 세자 자리를 금강에게 준다면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실제 역사와 유사하게 견금강을 죽이고, 신검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부친인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견훤이 금산사에서 빠져나와 세력을 규합한다면 부자간에 엄청난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왕권을 놓고 부자간의 전쟁이 벌이지는 나라가 고려처럼 오백년간 왕위가 이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머지 십여 명의 배다른 왕자들도 제각기 난립했다면 결국 후백제가 통일하여 다시 백제가 오백년을 더 왕권을 이어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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