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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효녀 지은의 이야기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4. 3. 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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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효녀 지은의 이야기

 

원래의 이야기 내용

     『삼국사기48 열전8 효녀 지은편에 수록된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녀 지은은 오늘날 경주 지역에 사는 평민 백성인 연권(連權)의 딸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나이 32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품팔이나 구걸을 해도 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려웠고, 결국 지은은 쌀 10여 석에 자신을 팔아 부잣집의 종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숨기던 지은은 사실을 알아챈 어머니가 절망하여 울부짖자 함께 울었다. 지나가던 효종랑(孝宗郎)이 사연을 듣고 효성에 감복하여 곡식 일백섬과 옷을 보내고 몸값을 갚아 효녀 지은의 신분을 양민으로 되살려 주었다. 효종은 유명한 화랑이다. 소식을 들은 그의 낭도주2들도 각각 곡식을 보냈으며, 왕도 이를 알고 곡식 500섬과 집을 하사하였다. 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역주3을 면제해 주었으며, 곡식이 많아져 도둑이 들까 염려하여 군사들을 보내 집을 지키게 하였다. 또한 지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사는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으로 칭하고 그녀의 미담을 널리 알렸으며, 효종랑의 행동도 치하하여 자신의 형인 헌강왕의 딸과 혼인하게 해 주었다.

 

효종랑은 누구인가

     신라의 화랑 효종은 문성왕의 현손이자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 김부의 아버지다. 신분상으로는 진골이었다. 헌강왕의 맏사위로 신망이 두터웠던 효종은 효공왕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을 가장 적임자로 떠올랐지만 예겸의 전략에 말려 전쟁터로 나갔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전쟁터에서 효종랑은 죽음을 맞았지만 견훤과의 인연으로 후일 아들 김부가 견훤에 의해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즉위하게 됐다. 왕의 큰 사위로, 화랑의 우두머리로, 효녀 지은이의 남모른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왕손 효종도 전쟁터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는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뛰어난 학식과 출중한 무예실력을 가지고 많은 화랑들이 따르는 인품까지 갖춘 훌륭한 인물이지만 정략적인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효종랑의 이야기가 바른 정치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효종랑은 지은을 잘 알고 있었을까?

     『삼국유사5 효선9 빈녀양모편에 실린 이야기에서는 효종랑이 포석정(鮑石亭)에 나가 놀다가 문하생들에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한 한 효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그려진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수록된 효녀 지은의 이야기와 거의 같다. 다만, 효종랑이 직접 모녀의 통곡 장면을 목격하지 않고 이를 문하생들에게 전해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종랑은 지은의 불쌍한 사연을 전해 듣고 도왔고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하사품을 내린 왕이 진성여왕인 것이다. 그리고 효녀의 집이 나중에 '양존사(兩尊寺)'라는 절이 된 것은 삼국사기와 서로 다르다.

 

심청전과 유사한 효녀 지은

     효녀 지은의 이야기는 자신의 몸을 팔아 부모를 봉양한 효행담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효행담에서는 자신의 몸을 파는 매신(賣身)이야기 전개의 핵심 사건으로서 조선조의 신청전의 모티프하고도 유사하다. 아마도 심청전의 소재가 효녀지은 설화에서 따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병든 모친이라는 지은의 환경과 맹인 심학규의 딸이라는 심청의 구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자식의 희생의 맥락에서 효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던져 부모를 봉양하는 효행의 서사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고소설 심청전(沈淸傳)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근원 설화로 인식되는 것은 추론이 가능한 것이리라. 삼국유사소재 이야기의 경우 서사 말미에 '양존사'라는 절의 창건 유래담이 덧붙어 있어 사찰(寺刹) 연기(緣起) 설화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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