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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의 구체적인 출생과 활동 시기 그리고 그의 가족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라시대의 화가로,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이 적혀 있다.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는 기록에 없으므로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미천한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현재 한국사 기록에 남은 화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을 가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가 뛰어난 화가였음을 전하는 기록과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는 농촌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뛰어났다고 하며, 그의 활약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가 그렸다는 단속사(斷俗寺)와 황룡사(黃龍寺)의 완공시기 그리고 백률사(柏栗寺)의 중수기 가운데 신문왕 때 당(唐)나라 사람 승요(僧瑤)가 신라에 와서 솔거로 개명하였다는 말이 전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봉하였으며, 왕도 조서(詔書)를 내려 솔거로 명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신라보다는 통일신라시대에 활동하였던 화가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그린 것으로 기록에 전해오는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황룡사의 「노송도(老松圖)」이며, 이 벽화는 노송을 실감나게 잘 그려 새들이 착각하고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새들이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그림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었다는 방증이다. 이 밖에 불교회화로 분황사(芬皇寺)의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와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維磨像)」·「단군초상(檀君肖像)」·「진흥왕대렵도팔폭(眞興王大獵圖八幅)」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관음보살 삼상(三像)을 조각하였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황룡사 「노송도」는 소나무의 그림이 생동감 넘치는 사실적인 채색화였을 것이다. 이 일화는 당시에 사실적인 묘사 중심의 회화가 발달하였음을 입증해주는 사례이며, 또 이는 당대의 불교 조각의 사실적 묘사수법의 발전에서도 확인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불화와 관련된 문헌자료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먼저 생존 시기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화성으로 불리던 솔거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 경주 황룡사에 그렸던 솔거의 <노송도>는 그 설화적 성격의 스토리로 인해 매우 사실적인 채색화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밖에 솔거 작으로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데 분황사 <관음보살상>의 경우 당시 예배용 불화가 그려졌음을 전하는 증거이다.
솔거의 그림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황룡사 벽에 그린 나무 그림이 너무 진짜 같아 새들이 날아가다가 진짜인 것으로 착각해서 앉아서 쉬고 가려다가 부딪힌 이야기가 있다. 그 이후 벽의 소나무 그림의 색상이 바래졌는데도 새들은 계속 부딪혔다. 그러다 어떤 승려가 색이 부옇게 바랜 소나무 위에다가 다시금 색을 칠했는데, 그 이후로는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솔거가 예전에 그린 색이 바래고 희미한 소나무에는 새들이 찾아와 앉으려 했지만 승려가 새롭게 그린 이 나무 그림에는 새가 가짜인 줄 알고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오리지날 그림을 보고 싶지만 그 원본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뛰어난 그림을 보고 착시 현상을 일으킨 사례는 조선의 신사임당의 이야기 중에서도 솔거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사임당이 유년 시절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은 꽈리나무에 앉은 메뚜기 그림이었다. 신사임당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마루에 놨는데, 너무 잘 그린 나머지 그 집에서 기르던 닭이 그 메뚜기를 진짜 메뚜기로 착각하고 마구 쪼아서 종이가 찢어져 그림을 망쳐버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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