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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眞表:752-?)는 신라 중기의 고승(高僧)이다. 성은 정(井),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며, 완산주(完山州) 만경현(萬頃縣) 출신이다. 삼국통일 이후 과거 백제 땅에서 태어난 승려이다. 진표율사는 유가론(瑜伽論)과 유식론(唯識論)을 중심교학으로 하여 연구체계화한 법상종(法相宗)을 금산사(金山寺)에서 개종하였다. 또한, 그는 미륵신앙이 강하였는데 미륵설계와 점찰법(占察法)으로 민간을 선도하였으며 대단한 교세를 이룩하였다. 이런 면에서 진표는 법상종을 실천적 종교운동으로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르 받는다. 그의 제자로 영심(永深) · 보종(普宗) · 신방(信芳) · 체진(體珍) · 진해(珍海) · 진선(眞善) · 석충(釋忠) 등이 있는데, 모두 신라 산문(山門)의 조사가 되었다. 그만큼 신라 불교계에서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송고승전(宋高僧傳)》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두고 산에 가서 사냥을 한 후 개구리 일은 잊고 지내다가, 이듬해 봄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서 그곳에 가 보니 지난해에 담가 둔 그대로 버들가지에 꿰어진 채 울고 있는 개구리를 보았다 한다. 이에 뉘우치고 불도에 뜻을 두어 12세에 금산사로 들어가 숭제법사(崇濟法寺)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숭제법사는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선도(善道)에게 배우고 오대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현신(現身)을 맞아 오계(五戒)를 받고 돌아왔으므로 진표가 도통(道通)의 요령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선계산(仙溪山) 불사의암(不思議菴)에 들어가 7야 7일을 고행으로 마음을 닦은 끝에 740년(효성왕 4) 음력 3월 15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현신을 맞아 정계(淨戒)를 받았다. 다시 영산사에서 도를 닦고 마침내 소원이던 미륵보살의 현신을 맞아 752년(경덕왕 11) 음력 2월에 《점찰경(占察經)》 2권과 간자(簡字: 점치는 대쪽) 189개를 받았다.
신라 성덕왕때 전주 벽골군의 어부 정씨 집에 오색구름과 서기가 서리면서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이 상서로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장차 크게 될 인물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며 축하했으니 이 아기가 바로 유명한 진표율사다.
아버지 진내말과 어머니 길보랑 사이에서 태어난 진표는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구리 마리를 잡은 사건 이후에 불가에 관심이 생겼다. 자신도 모르게 달려 어두워서 당도한 곳이 모악산의 금산사였다. 부친과의 논의 끝에 삼년후에 불가에 귀의하기로 하고 부모님 공양에 힘썼다. 부모봉양시에 잡아온 불고기의 말을듣기돠는 기이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금산사 숭제법사 문하에 들어간 그 소년은 삼년간의 행자 수행을 거처 진표란 법명을 받았다.
미륵부처님과 지장보살 친견을 서원한 진표스님은 그 길로 스승께 3배를 올린 후 운수행각에 나섰다. 선지식을 두루 만난 진표 스님은 공부에 자신이 생기자 찐쌀 2말을 가지고 변산 부사의방에 들어갔다. 하루에 쌀 5홉을 양식으로 하고 그중 1홉은 절을 찾는 쥐에게 먹였다. 그렇게 3년간 뼈를 깎는 고행을 하면서 스승이 내리신 두 권의 경을 공부했으나 아무런 감응이 없자 스님은 스스로 절망했다. 진표스님은 업장이 두터워 평생 공부해도 도를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 몸 버려 도를 얻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는 높은 절벽 위에서 업장 소멸을 기원하며 몸을 던졌다. 그러자 몸이 막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어디선가 흘연히 청의동자가 나타나 두 손으로 스님을 받아 절벽 위에 올려놓았다. 이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스님은 바위 위에서 오체투지로 절을 하며 3·7일 기도에 들어갔다. 3일이 지나자 진표 스님의 손과 무릎에선 피가 흘렀다. 7일이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금장을 흔들며 나타났다. 지장보살의 가호를 받은 진표 스님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원상태가 되었다. 스님은 이 같은 신령스런 감응에 감동하여 남은 기도 기간 동안 더욱 용맹 정진했다. 마침내 진표 스님은 드디어 천안을 얻어 #도솔천중이 오는 형상을 보았다. 그리고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도솔천 대중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와 스님의 머리를 만지면서 수기를 주었다. 수기를 준 미륵과 지장보살은 꽃비와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오색구름을 타고 흘연히 사라졌다. 물론 불교계에서 쓴 이런 신통한 설화들은 불교포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진표율사에게서는 유난히 신이담이 많은 것은 아마도 율사의 대단한 면모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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